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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하나의 해방이다

오늘 저녁메뉴느느 죽음입니다

얼마 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화제 속에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다. 이제는 주말에 뭘 보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씨 신드롬‘을 만든 그 배우는 인생의 봄날을 만난 것 같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도 없이 모든 등장 인물들이 개성있고 매력이 있다. 매일 투덜거리지만 너무 열심히 사는 삼남매.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아버지. 그들을 위해 하루 세끼를 충실하게 챙기는 어머니. 티격태격하지만 서로 챙기는 따뜻한 가족.      

  어머니는 농사,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한다. 사고로 몸이 아파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쌀을 씻으며 이런 상황에도 나는 밥을 해야 하냐며 푸념을 하면서도 또 밥을 한다. 유난히 온 가족이 밥을 먹는 장면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나는 밥을 앉히고 잠시 쉬러 방에 들어갔다. 아들 창희가 부른다. 

”엄마 밥 다 된 것 같아. 엄마, 엄마“

 답이 없다.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방송 후에 많은 기사와 댓글이 있었다. 어머니는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왜 죽음으로 해방되었어야 했을까. 여자라서? 아내라서, 엄마라서 그런 식으로 밖에 해방 될 수 없는 걸까. 답답하고 슬펐다.      

  손에 많은 것을 움켜쥐고 놓을 수 없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 죽음은 그에게 형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 버티고 하루하루 힘들게 채우는 우리들은 죽음이 해방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몇 년 전 너무 절망스러울 때, 죽으면 이런 고통이 다 사라질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살반대주의자이다. 물론 동생의 자살 이후 더욱 그 생각이 강해졌다.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죄책감을 남기는지 겪어봐서 안다. 영원히 옅어지지 않는 상흔.     


 사랑으로 해방되려는 자, 죽음으로 해방되려는 자. 당신의 해방은 무엇인가. 

마지막엔 창희가 우연히 실수로 들어간 교실에서 장례지도사 수업을 듣게 된다. 결국 죽음이 해방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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