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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l 18. 2020

표현은 서툴지만 우린 둘도 없는 형제랍니다

말티즈 강아지 4형제 중 극적으로 상봉한 자두와 만두

지금까지 전개된 자두 입양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은 독자분이라면 주니의 독일어 과외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주니가 반려견 입양을 못해서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우리에게 꾸준히 브리더와 유기견 보호소 연락처를 알려주고 결국 자두 입양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바로 그 사람이다.


주니는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서 극적으로 말티즈 강아지를 만나게 되고 입양할 꼬물이를 결정하게 되자, 이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도 먼저 과외쌤에게 알려주었다. 과외쌤은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며 일주일 뒤 강아지를 직접 데리러 갈 때 함께 가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독일어가 서툰 우리를 위해 통역사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과외쌤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니가 보내준 말티즈 꼬물이 4형제 사진을 보고 마음이 너무 설레어 남편과 상의 끝에 그중 한 마리를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 살던 말티즈 강아지 4형제 중 두 아이가 우리 가족과 과외쌤 가족 품에 안기게 되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말티즈 강아지 형제의 알콩달콩 상봉기이자 그들만의 친해지는 과정이다.

 



자두와 만두. 두 아이의 이름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말티즈 강아지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국의 과일과 음식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국인을 주보호자로 둔 이유로, 그럴듯한 독일식 이름으로 불릴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에겐 너무나 귀엽고 앙증맞은 이름이다.


이쯤에서 주니의 독일어 과외쌤 개인 신상을 조금만 공개하자면, 사실 비엔나에서 매우 유명하고 능력 출중한 투어 가이드다. 지난 3월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본업인 가이드 활동이 잠시 뜸한 상황에서 우리와 인연이 닿아 주니의 독일어 공부를 도와주게 되었다.


과외쌤과의 하드 트레이닝 덕분에 주니의 독일어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외쌤은 우리 가족의 비엔나 생활 적응에 너무나 소중한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고, 개 이야기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언제든 기회만 닿는다면 입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강아지 입양에 성공했을 때 과외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결국 직접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를 찾아가서 자두의 형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를 입양했다. '자두'와 라임을 맞추기 위해, 강아지 이름도 '두'자 돌림의 '만두'라고 지었다.


말티즈 입양 후 첫 번째 과외 날. 일주일에 두 번씩 진행하는 독일어 과외는 우리 집과 과외쌤 집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는데 이번에는 과외쌤 집으로 방문하는 날이었다. 자두와 만두가 유기견 보호시설에서 영문도 모르고 이별을 한 후 극적으로 상봉하는 운명의 날이기도 했다.

  

입양된 후, 자두와 만두의 역사적인 첫 만남. 마치 점잖게 인사를 나누는 것 같은 모습


보통 길에서 개들이 처음 만나면 어느 정도 탐색의 시간을 가진 후 적극적인 몸짓으로 교감하지만, 자두와 만두는 눈빛과 체취만으로도 서로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만나는 순간부터 두 아이는 온몸을 부딪히며 서로를 느끼고 감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너무 감격해서였을까 아니면 형제애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동물적 본능이 강해서였을까. 이내 두 아이의 몸싸움은 심해졌고 상대방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이빨로 물고 늘어졌다. 결국 보다 못한 과외쌤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만두를 안고 수업을 해야 했다.


3일 뒤 우리 집에서 독일어 수업이 진행되었고 세상에 둘도 없는 말티즈 형제는 또다시 치열한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니 방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흥분한 두 아이를 뜯어말리느라 진이 빠질 정도였다. 다행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두와 만두는 함께 밥도 먹고, 사슴뿔 장난감을 갖고 놀기도 하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격렬했던 몸싸움 후, 자두와 만두가 거의 얼굴을 밥통에 박고 열심히 식사하고 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사이좋게 사슴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자두와 만두

  



그날 독일어 수업을 마친 후, 우리는 자두와 만두를 데리고 과외쌤이 예약한 동물병원에 갔다. 청진기로 몸 여기저기를 진찰하고 똥꼬에 온도계를 넣어 체온을 검사하는 등 다양한 검진을 한 후, 의사는 두 아이 모두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맞을 접종 내용과 중성화 수술 시기도 알려주었다.


자두와 만두가 형제인데도 너무 거칠게 싸워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의사는 그건 개들 사이에서 너무나 정상적인 친교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눈에는 심한 다툼처럼 보이지만, 개들은 원래 그렇게 노는 게 당연하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물론 한 아이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격렬해지면 잠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주는 것도 좋다고 충고했다.


자두와 만두의 생애 첫 병원 검진을 무사히 마친 우리 가족과 과외쌤 가족은 도나우 강가 와이너리 농장 인근의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강아지 입양을 축하하는 저녁식사를 했다. 맛있는 오스트리아 전통요리를 함께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식탁 밑에서 언제 싸웠냐는 듯 입을 맞대고 사이좋게 자고 있는 자두와 만두


그러다 잠시 식탁 밑을 내려다보니 두 아이가 얼굴을 맞대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자두야 만두야 너희들만의 표현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래도 너무 심하게 물지는 말고 사이좋게 우애롭게 잘 자라기 바래. 자주 만나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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