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훈데슐레 퍼피 클래스에 첫 등교한 자두
"혹시 훈데슐레에서 수업받으셨나요?"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이웃 반려견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두가 그 집 개에게 너무 들이대며 반가워하는 모습이 민망했던 나와 내 딸 주니는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직 안 받았어요. 곧 다니려고 해요."
훈데슐레(Hundeschule). 독일어권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개를 대상으로 교육시키는 전문기관 또는 시설을 뜻하는 단어다. 몸무게 10킬로그램 이상인(또는 예상되는) 대형견들은 의무적으로 훈데슐레에서 보호자와 함께 교육을 수료하고 이수증을 받아야 한다.
자두처럼 10킬로그램 미만인 소형견들은 반드시 훈데슐레에 다닐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반려견의 몸무게와 상관없이 대부분 훈데슐레를 보내고 있다. 특히 생후 6개월이 안 된 어린 강아지들은 퍼피 클래스에 등록하여 기초적인 교육을 받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인터넷으로 훈데슐레를 검색해보니, 비엔나에만 수십 개의 장소가 추천되었다. 수업료도 천차만별이었다. 강사의 유명세 때문에 과도하게 비싼 곳이나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을 제외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야외 교육시설을 갖춘 곳으로 결정했다. 천방지축 자두가 드디어 규율 잡힌 학생으로 탄생할 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선택한 강아지 학교는 비엔나 남서쪽에 위치한 <비너 훈데슐레(Wiener Hundeschule)>라는 곳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여서 비교적 가깝고, 수업료도 10회 160유로로 저렴한 편이다. 수업은 1회 1시간으로 진행되며, 주중이나 주말에 개설된 퍼피 클래스 시간에 맞춰 자유롭게 참석하면 된다.
아무래도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서, 주니 독일어 쌤이 키우는 만두와 함께 첫 수업에 참석하기로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아지 학교를 처음 방문한 일요일 오전, 비너 훈데슐레의 자그마한 정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니 시원하게 탁 트인 야외 교육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사무실에 들려 보호자와 강아지의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했다. 훈련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자두의 패스포트를 펼쳐서 접종상황을 꼼꼼히 확인했다. 교육장 입구에는 자두처럼 어린 강아지 10여 마리가 주인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제법 덩치가 큰 리트리버부터 자두보다도 작은 치와와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훈련사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잔디밭에 둘러 모인 보호자와 강아지는 서로에게 집중하며 눈을 맞추는 연습과 앉은 상태에서 먹이를 주는 훈련을 반복해서 실시했다. 자두는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다. 옆에 있는 다른 강아지에게 다가가려고 낑낑거리면서 좀처럼 교육에 집중하지 못했다.
수업은 30분 동안의 훈련과 30분 동안의 놀기로 구성되었다. 거창하게 말해서 훈련이지, 사실은 강아지를 앉게 하고 사료를 주거나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집에서는 명령에 잘 따르던 강아지들이 훈련장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우왕좌왕 헤맸다.
하지만 훈련을 담당한 선생님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오늘 여기서 훈련한 것을 집에 가서 계속 연습하세요. 잘못 행동하더라도 가급적 혼을 내거나 야단치지 말고, 잘했을 때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보상해주세요. 어렸을 때 좋은 버릇을 들여놓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힘들게 30분 동안의 교육을 마친 후, 강아지들은 목줄을 풀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사이즈를 기준으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놀이를 진행했다. 자두는 다른 강아지들과 어색한 탐색전을 벌이다가 이내 서로 뒤엉켜서 몸 싸음을 하기 시작했다.
강아지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공간 한가운데에는 조그만 풀장이 있었다. 그곳에 다가간 몇몇 강아지들이 발을 담그거나 목을 축이곤 했다. 하지만 물놀이를 좋아하는 우리 자두는 풀장에 아예 몸을 담그고 놀기 시작했다. 한참을 물 안에 있던 자두는 다시 뛰어나와서 다른 강아지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치고 놀았다.
드디어 역사적인(?) 강아지 학교 첫 수업이 끝났다. 도대체 뭘 배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자두가 다른 강아지들과 신나게 뛰어 논 것만으로도 대견스러웠다. 비록 수업시간에는 매우 산만한 학생이었지만, 놀이시간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인싸로 변했다.
아주 오래전,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연극 공연하는 것을 보러 갔을 때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서 뛰어다니는데 내 눈에는 오직 우리 아이만 보였다. 일종의 칵테일파티 효과처럼 주위가 아무리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나에게 관심 있는 것만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나는 비슷한 경험을 다시 했다. 자두가 10여 마리의 또래 강아지들과 엉겨 붙어 노는 순간에도 내 눈은 오로지 자두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자두의 주보호자인 내 딸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평소에는 밝고 여유로운 주니의 얼굴이 훈데슐레에서는 시종일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누군가는 훈데슐레가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곳이 아니라 보호자를 교육시키는 장소라고 말한다. 스파르타식 훈련이 아닌, 느슨한 놀이식 교육을 하는 것에 실망해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나와 주니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마음속에서 자두와 함께 다음 수업을 차분히 준비하기로 했다.
난생처음 자두가 경험한 훈데슐레 첫 수업. 자두도 우리도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