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요" 반려동물을 위한 쇼핑몰, 프레스납
세계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손꼽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반려동물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한국의 펫 시장 규모가 6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펫푸드와 펫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발한 신제품과 첨단 기능 전자제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료와 간식에서는 기존 업체에 대형 식품업체들까지 합세하여 '유기농', '건강식', '프리미엄' 등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반려동물 전용 공기청정기가 등장하는가 하면, 강아지를 위한 유치원부터 개 전용 러닝머신과 치매방지를 위한 전문치료제 개발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그에 비해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반려동물 상품 시장은 어찌 보면 우직스러운 전통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첨단 용품으로 반려견을 보살피고 예쁘게 꾸미기보다는 산책을 통한 정서적 교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주문하기보다는 직접 개를 데리고 상점에 가서 쇼핑하는 것을 즐긴다.
반려견에 대한 전통적인 돌봄 문화를 고수하는 가운데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개를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반드시 들리는 전문매장이 있으니, 바로 프레스납(FRESSNAPF)이다. 나와 주니는 자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프레스납 나들이를 한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애완동물 사료 회사인 프레스납은 1990년 독일에서 설립되었다. 현재 유럽 12개 국가에 1,4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비엔나에만 17곳의 상점이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 살든지 차로 10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3곳의 프레스납을 번갈아 방문하곤 했다.
물론 인터스파(Interspar)나 메르쿠어(Merkur), 빌라(Billa) 같은 비엔나의 대형마트에 가면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와 간식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키우는 개의 종과 나이, 몸무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료를 선택해야 하거나, 보다 다양한 간식과 놀이용 장난감을 구매하고 싶으면 프레스납 같은 전문매장을 찾게 된다.
프레스납은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위한 종합쇼핑몰이자 대형매장이다. 100평 이상의 드넓은 공간에 개와 고양이, 토끼와 새, 그 밖의 희귀 동물 전문코너가 시원하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우리 자두를 위한 개(Hund) 코너가 역시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사료와 간식, 장난감과 목줄, 쿠션과 이동용 켄넬 등 없는 게 없다.
반려견에게 가장 중요한 사료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역시 로열 캐닌이다. 특히 자두 같은 2킬로그램 미만의 강아지들에게는 로열 캐닌 특유의 작은 알갱이와 좋은 향기 그리고 충분히 함유된 영양분이 제격이다. 프레스납 진열대의 거의 한 코너가 로열 캐닌에서 제공하는 각종 사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통조림 형태의 고기 간식과 캔에 담긴 유기농 스낵 코너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먹거리들이 진열되어 있다. 개 미용용품과 장난감 코너 역시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중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개 가슴 줄과 목줄 진열대였다. 비엔나 시민들이 개 산책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는지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가 프레스납을 즐겨 가는 이유는 단지 자두에게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만이 아니다. 프레스납에 자두를 데리고 가면 일단 직원들이 난리가 난다.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는 자두가 재롱을 피우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어찌 그리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감탄할 정도다. 손님이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두와 놀고 있어서, 내가 카운터 쪽을 가리키며 가야 되지 않냐고 알려준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개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프레스납을 방문하는 고객 중에서 절반 이상은 반려견을 데리고 매장을 방문한다. 자두와 가게 입구 근처를 맴돌다 보면 십중팔구 다양한 모습의 개들과 만나게 되고 이내 그들만의 거친(?) 몸싸움과 체취 맡기가 시작된다.
비엔나에 사는 개들은 대부분 훈데슐레(Hundeschule), 즉 개 학교를 다녀야 한다. 몸무게 10킬로그램 이상의 성견은 의무적으로 가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에티켓과 규율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레스납에서 다른 개와 만났을 때, 철부지 자두는 마냥 들이대고 올라타고 하면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대편 개들은 가만히 있거나 점잖게 얼굴을 돌린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미리 생각한 후 배려 깊게 행동할 수 있는지 여부가 성숙의 척도다. 자두처럼 너무 반가운 나머지 상대방이 고통을 느낄 정도로 물어 버린다면 미성숙하다는 의미이고, 이는 집에서 또는 훈데슐레에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
어쨌든 프레스납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두의 취향은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개껌은 기본이고 사슴뿔과 특수 고무공을 가지고 하루 종일 신나게 놀게 되었다. 로열 캐닌 사료와 캔에 담긴 고기를 섞어 먹으면서 식욕이 갈수록 왕성해졌다. 차에 타기만 하면 긴장을 하는 자두가 프레스납 가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드라이브를 즐기게 되었다.
우리 같은 이방인이 살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지만, 정작 자두 같은 반려견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행복한 곳, 바로 비엔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