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었던 보호시설을 떠나며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던 꼬물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비엔나 유기견 보호소에서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강아지를 만났다. 태어난 지 8주 된 말티즈 꼬물이.
하지만 바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예방접종을 받아야 했다. 유기견 보호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마리온은 개 신분증을 만들어야 하니 보호자 이름, 주소, 거주 증명서 그리고 강아지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강아지 목 부위에 등록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이 삽입된다고도 했다. 하나의 생명체로써 사람만큼 개도 존중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나와 주니는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그곳을 떠났다. 수의사가 되는 게 장래희망인 주니는 다음에 오게 되면 아예 반나절 정도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리온은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자기 혼자 개들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나와 주니는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를 향해 출발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마리온과 마리온 엄마.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개의 천국, 환상적인 동물의 나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리온이 웃으며 우리를 안쪽 마당으로 안내했다. 종류도 다양한 대형견들이 반갑게 다가왔다. 현재 20마리 정도 있는데 그중에서 8마리는 마리온이 직접 키우는 개라고 했다. 자신의 개와 유기견이 섞여 있고, 이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자유롭게 마당을 활보하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안 보이던 마리온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냈다. 인자한 모습의 할머니는 연신 개들과 입맞춤을 하며 "알레스 굿(Alles Gut)"(괜찮아)이라고 속삭였다. 할머니가 개의 이름을 부르면 말썽 피우던 녀석도 냉큼 그녀에게 다가가서 다소곳이 앉았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의 성견들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시간에 맞춰 두 마리씩 산책을 다녀왔다. 강아지들은 안쪽에 있는 거실에서 돌봄을 받으며 가끔씩 마당으로 외출했다. 줄에 묶여 있거나 집에 갇혀 있는 개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는 날에는 모두들 그늘진 곳에 누워서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마리온은 주니에게 개 사료 주는 것을 체험하게 한 후, 안쪽 마당으로 가서 닭과 오리들에게도 먹이를 주라고 부탁했다. 나도 주니의 뒤를 따라 뒷마당으로 들어간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닭과 오리 가족들이 요란스레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고,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마리온의 설명대로라면, 곧 우리 품으로 올 말티즈 꼬물이는 태어나서 6주 정도 엄마 곁에 있다가 이곳으로 와서 2주 정도를 보낸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열흘 이상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조그만 철창 안에 갇혀 지내거나 안락사를 당하기도 하는 한국의 열악한 유기견 보호소를 떠올렸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리온은 우리 꼬물이의 눈 아래 눈곱이 굳어 있는 털을 조심스럽게 잘라주면서, 사료를 물에 불려 먹이는 방법과 언제 병원에 가서 마지막 접종을 해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단지 강아지를 팔아 버리는 게 아니라 정성스럽게 돌보다가 떠나보낸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주니가 한 달에 최소한 한 번은 찾아오겠다고 말하니 따뜻한 심성의 마리온은 언제든 대환영이라고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드디어 우리는 말티즈 꼬물이를 품에 안고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를 떠났다.
그런데 정작 보호시설에서는 잘 놀고 잠도 늘어지게 자던 꼬물이가 차에 타자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흐느껴 우는 듯한 울음소리가 강아지의 온몸에서 느껴졌다. 뒷좌석에서 강아지를 안고 가던 주니가 당황해서 개가 듣기 편안한 음악을 검색해 들려주었다.
노래 효과였을까. 울다 지쳐서였을까.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얕은 잠에서 깨어난 강아지는 다시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어르고 달래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후에도 꼬물이는 한동안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나와 주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서글프게 낑낑거렸다.
꼬물이에게는 엄마와의 이별도 난데없이 찾아왔고, 보호시설에서 즐겁게 보내던 형제들, 동료들과의 헤어짐도 느닷없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정이 들었다 싶으면 그들 곁에서 멀어지는 쓰라린 경험은, 세상에 태어난 지 60일 정도 된 강아지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정든 이와의 헤어짐은 항상 서글프다.
나와 주니는 운명처럼 우리 곁에 찾아온 꼬물이를 바라보며 이제 더 이상 아픈 이별은 없을 거라고, 앞으로는 마음 편히 지내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