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즈 강아지와 함께 비엔나 일상을 시작하다
사실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부터 나와 주니는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 중이었다. 난상토론 끝에 3개의 후보가 추려졌다. 올리, 자두, 뭉치. 올리는 뭔가 기품 있고 세련된 이미지이고, 자두는 작고 귀여운 느낌이며, 뭉치는 장난꾸러기 털북숭이를 연상시킨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에서 말티즈 강아지를 본 순간, 우리의 생각은 저절로 일치했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자두야! 꼬물이의 모습은 귀엽고 앙증맞은 자두를 연상시켰다.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강아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볼 때를 대비해서도 발음하기 편리한 이름이 좋았다.
그뤼스 고트(Grüß Gott).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지역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우리말로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데, 식당이나 마트에 가면 항상 듣게 된다. 이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자두에게 진심 어린 환영 인사를 할 차례다. "그뤼스 고트! 자두"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우리 아이 육아 생활. 수시로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는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나의 생활 리듬은 사라지고 만성피로 속에서 녹초가 되곤 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던 건 아주 가끔씩 아기가 보여주는 천사표 미소와 경이로운 재롱 덕분이었다.
자두가 우리 집에 온 지 어느덧 일주일. 나는 거의 이십 년 전의 힘들면서도 짜릿했던 육아 시절을 데자뷔 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충격이 각인되어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는 자두는 자다가도 항상 나나 주니가 곁에 있는지 확인한다. 덕분에 우리는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자두와 함께 자야 했다.
갓난아기나 강아지나 낮에 자주 자고 밤에 자주 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단 깨면, 주위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할 정도로 울거나 짓는다는 점도 일치한다. 그러니 그런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가족 중에서 잠귀가 가장 밝은 내가 당연하게도 자두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갓난아이와 강아지가 다른 점이 있다면 강아지의 적응력이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자두는 하루가 다르게 밤에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깨서도 혼자 조용히 매대기를 치며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우리 집에 온 지 3일 정도가 지나니 이제 자두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은 적어졌다.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배변관리. 사실 배변패드 자체가 없는 유럽에서 대부분의 개들은 집에서 용변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하루에 서너 번 주인과 함께 산책할 때 야외 배변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이것을 생후 60일 된 자두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 당분간은 집안 여기저기에 자두가 남긴 소화의 흔적들을 열심히 지워나가야 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서 적어도 대변은 야외 테라스나 산책하는 길에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한 후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소식(?)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번쩍 안아서 테라스로 내보내면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킁킁거리다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여 용변을 해결한다. 이 역시 갓난아기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 기특한 자두^^
어린 강아지인 자두에게는 특별 조리된 식사가 제공된다. 주니가 퍼피용 사료를 개 밥그릇에 가지런히 깐 후 뜨거운 물로 30분 정도 불려서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작업을 담당했다. 아직 치아가 완전히 자라지 않아 부드럽게 불려서 먹여야 한다고 마리온이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줘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우리의 속을 태우던 자두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먹성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간간히 소시지나 소뼈로 만든 특별 간식도 섞어 주면서 영양을 보충해주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잘 먹고 잘 싸는 게 건강의 비결인 법. 자두는 하루가 다르게 씩씩해지고 있었다.
집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하자, 이제 자두는 집 밖의 세상에 조심스럽게 진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아파트 맨 위층이어서 야외 테라스가 넓은 편이다. 테라스에는 10센티미터 높이의 나무판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자두가 대소변을 보기도 하고 나무에 이갈이를 하기에 적합했다.
화창한 한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자두와 함께 외식을 했다. 비엔나에서는 식당이나 쇼핑몰, 지하철 등 어디든지 개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 다만 반드시 목줄을 하거나 입마개를 차야한다. 자두를 위해 주위 경관이 좋고 탁 트인 야외 테이블로 예약했다.
자두는 태어나서 처음 차는 가슴 줄이 영 불편한 기색이다. 하지만 야외에 자리 잡은 식탁 근처 잔디밭에 들어가더니 잔디와 흙과 벌레가 주는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풀을 뜯어먹고 흙을 파고 개미를 쫓아다니며 정신없이 뛰어놀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두를 본 사람들마다 미소를 지으며 "쥬스(Süß)!"라고 속삭였다. 우리말로 "귀여워"란 뜻이다. 잔디밭에서 놀고 와서 꼬질꼬질한 얼굴인데도 대형견을 키우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자두처럼 작은 강아지가 귀엽게 보였나 보다.
구름이 참 예쁜 7월의 어느 주말 오후. 우리가 "그뤼스 고트"하며 환영해 주었던 자두에게 비엔나 사람들은 "쥬스"하며 활짝 웃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