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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l 06. 2020

그 아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비엔나 유기견 보호소에서 말티즈 퍼피를 입양하다

우리 가족이 비엔나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이제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3년 동안 거주할 집을 마련하고, 한국에서 배로 운반된 이삿짐들을 정리하고, 아이가 다닐 국제학교 입학을 챙기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디 변변히 여행가지도 못하고 삼시 세 끼를 집밥으로 해결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집중한 일이 있었으니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는 프로젝트였다. 나와 내 딸 주니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견인이다. 한국에서는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를 애지중지 키웠다. 장기간의 외국생활 때문에 절친 가족에게 입양 보내는 순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절대로 다시는 우리가 키우는 반려동물과 헤어지지 않을 거야"  


나와 주니는 굳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유럽 생활이 결정되고 난 후부터 어떤 종을 키울지, 어떤 환경에서 키울지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개의 천국이라는 유럽에서 맘 놓고 우리 개를 키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2020년 2월 22일 우리 가족은 마침내 비엔나에 도착했다.




임시거처로 정한 호텔방에서부터 우리는 강아지 입양 사이트를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와 주니가 신중하게 정한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 대형견은 힘들더라도 중형견 크기의 종을 고르자. 한국에서 티컵 사이즈의 소형견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제부터 우리가 기를 아이는 적어도 10킬로그램은 돼야 했다.


둘째, 털이 많이 날리는 종은 피하자. 너무나 사랑스러운 골든 리트리버는 대형견이기도 하지만 털 빠짐이 장난이 아니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희한하게도 멋진 외모를 지닌 반려동물일수록 털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실내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호흡기 안전을 위해서도 가급적 털이 많이 안 날리는 종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잠정 결정한 종은 코카스패니얼과 푸들의 믹스견인 코카푸였다. 인터넷으로 오스트리아의 코카푸 브리더를 검색하여, 그중 가장 믿을만한 사이트에 입양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코로나였다. 브리더 농장에 방문할 수 없는 봉쇄(lockdown) 상황에서 단지 사진만 보고 입양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다음 후보는 꼬똥 드 툴레아였다. 비엔나로 출발하기 전부터 한국의 지인이 적극 추천했다. 그분이 알려준 프랑스 브리더에게 연락해서 입양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현재 가능한 강아지들은 8월 출산 예정이고 12주 동안 보살핀 후에야 데려갈 수 있단다. 아무리 늦어도 여름에는 입양할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유럽은 한국처럼 애견숍에서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강아지를 구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자격증을 보유한 브리더나 유기견 보호소에서만 입양을 할 수 있다. 겨우 알게 된 브리더 연락처로 전화하거나 유기견 보호소 사이트에 이메일로 연락하면, 방문이 불가능하다거나 아예 응답 자체가 없곤 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에 10개 이상의 입양 사이트에 연락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이미 예약되어 있어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거나, 사진만 보고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골라서 송금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좌절하면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애가 타게 기다리는 나와 주니의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주니의 독일어 과외 선생님이 유기견 보호시설을 방문해서 입양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성견이 된, 남모를 사정이 있는 반려견을 선뜻 입양하기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소개해준 몇 군데 시설에 연락했지만 역시나 방문 거절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과외쌤이 알려준 유기견 보호시설에 하염없이 방문 메시지를 보내던 주니가 기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아빠, 여기는 방문해도 된대. 내일 오후로 예약했어!"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라도 유기견 중에 조금 어리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가까운 개가 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우리는 출발했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Hundebetreuung Blumau). '블루마우에 있는 개 보호시설'이란 뜻의 이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다. 가는 길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도착하니 막 입양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이 보였다. 주니가 마리온이라는 이름의 주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제 전화로 예약한 사람인데요, 혹시 입양 가능한 강아지가 있나요?"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의 주인아주머니 마리온 탈해머 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방문한 개 보호시설에서 운명처럼 만난 말티즈 꼬물이 네 마리


세상에나. 말티즈 종의 강아지가 있단다. 그것도 네 마리나. 어미개가 출산하면서 배 수술을 했는데 강아지들이 젖을 빨며 수술 부위를 계속 핥아서 보다 못한 개 주인이 강아지들을 보호시설에 맡겼다고 한다. 혹시라도 입양할 사람이 있으면 주선해달라고. 지난주에 발생한 일이라 사이트에 올려놓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네 마리의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태어난 지 8주 된 꼬물이들이 앙증스럽게 손가락을 빨았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조용히 잠을 자는 아이, 코가 약간 하얀 아이, 유난히 작은 아이. 강아지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었다. 우리는 가장 덩치가 크고 활력이 넘치는 아이를 선택했다. 마리온 말로는 형제들 중에 가장 크게 성장해서 아마도 왕 말티즈가 될 거라고 한다.


운명처럼 만난 우리의 말티즈


파란만장,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우리는 비엔나에서 예쁜 말티즈 강아지를 입양했다.


마치 운명처럼 6월의 마지막 날, 너무나 기다리던 그 아이를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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