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살면서 항상 신경 쓰였던 것은 역시 아이 교육 문제였다. 한국과 유럽에서 번갈아가며 거주했기에 과연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유럽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힘들어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 역시 마냥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다시 유럽에서 살게 되었고 아이들은 원하던 국제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브뤼셀에서 우리가 처음 유럽 생활을 시작할 때, 큰 아이는 우리의 중등과정에 해당하는 세컨더리 스쿨 7학년으로 들어갔고, 둘째 아이는 초등과정인 프라이머리 스쿨 4학년에 배정받았다. 그로부터 7년 뒤, 이제 큰 아이는 런던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고, 둘째는 비엔나 국제학교에 10학년으로 입학하여 고등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은 브뤼셀과 비엔나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브뤼셀에서는 영국계 국제학교를 다녔고, 비엔나에서는 미국계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이 또한 국제학교의 두 가지 운영방식을 모두 경험한 셈이다. 이쯤 되면 유럽에 있는 국제학교의 학업과정과 운영방식을 섭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이 유럽의 국제학교에 대해 궁금해하는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유럽의 국제학교를 다닐 계획이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브뤼셀 영국계 국제학교의 독특한 운영방식
우리 가족은 2012년부터 2년 동안 벨기에 브뤼셀에 살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브뤼셀에서 남쪽으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워털루라는 도시에 거주했다. 1815년 프랑스 전쟁영웅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지금은 브뤼셀로 출퇴근하는 국제기구 임직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다국적 글로벌 도시이기도 하다.
워털루 인근 국제학교는 세인트존스(St. John's International School)와 ISF 워털루(International School of Flanders Waterloo) 두 곳이 있다. 세인트존스는 미국계 국제학교로서, 규모가 크고 당연히 학생 수도 많았다. 반면 ISF 워털루는 영국계 국제학교답게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소규모로 운영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나이와 교육환경 등을 고려하여 ISF 워털루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벨기에에서 우리 아이들이 2년 동안 다녔던 워털루 국제학교 ISF Waterloo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찾아갔을 때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학교라기보다는 큰 저택 같은 분위기의 외관에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건물의 옆을 돌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속시설들과 운동장, 놀이터가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젊은 여성 교장선생님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고, 우리 아이들이 배정받은 초등부와 중등부 주임교사가 공지사항을 알려주었다.
ISF 워털루는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각 학년에 1개 학급만 있으며, 학급 인원은 10~15명 정도다. 한국의 초등부에 해당하는 프라이머리 스쿨은 담임 선생님을 2명을 두어, 학생이 학습에 어려움을 겪거나 교우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별적으로 상담해주었다. 반면 중등부인 세컨더리 스쿨은 과목별로 담당 교사가 있는 교실에 학생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영국계 국제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하우스(House) 방식의 운영이다. 전교생들을 빨강, 파랑, 노랑, 초록 4개의 하우스별로 그룹핑하고, 같은 색깔의 하우스에 속한 학생들은 학년과 상관없이 1년 동안 크고 작은 교내 행사에 한 팀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같은 학년의 친구끼리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형, 누나, 동생들과 함께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 배우고 돌봐주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실제로 둘째 아이와 제일 친하게 지낸 이탈리아 여학생 엘리사도 같은 하우스에 속한 1년 선배였다.
브뤼셀에는 유럽연합 본부와 유럽의회가 있다. 명실상부한 유럽의 행정수도인 셈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도시 구성원들이나 국제학교 학생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큰 아이 반 아이들 국적을 확인해보니 미국, 벨기에, 프랑스,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정말 다채로웠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인종차별을 전혀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포용력 있는 다문화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럽의 국제학교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지만 국가별 공식 언어를 의무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벨기에 국제학교에서는 매일 1시간씩 프랑스어 수업을 했다. 처음 접하는 불어를 영어로 배우다 보니 무척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지금 큰 아이가 유창한 프랑스 발음으로 식당이나 마트에서 주문하는 것을 보면 나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짓게 된다.
ISF 워털루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시간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를 자주 마련했다. 매일 아침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10분 정도 신나게 율동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 날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고 춤을 추었는데 아이들이 싸이 얼굴을 보고 중국 사람이구나 해서, 우리 아이가 사실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교시가 끝나면 20분 동안 휴식시간이 있는데 웬만하면 다들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도록 권한다.
여름과 겨울에는 다양한 학교 행사가 개최되는데 이때 학부모들은 자기 나라의 고유음식을 준비하거나 아예 현장에서 요리하기도 한다. 스페인 학부모가 화덕을 마련하고 대형 팬에 파에야를 만들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 열리는 인터내셔널 데이에는 각국의 학생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음식을 함께 나누는 등 흥겨운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체육대회 기념사진을 찍은 옐로 하우스 학생들(좌)와 전통의상을 입은 인터내셔널 데이(우)
세컨더리 스쿨 7학년과 8학년을 보낸 큰 아이는 모두 10개 과목(수학, 영어, 불어, 인문학, 과학, 역사, 지리, 체육, 미술, 음악)을 공부했고, 중간/기말고사를 통해 절대평가로 성적을 매겼다. 90점 이상은 A+이고 10점 단위로 A, B, C 순서로 점수를 받았다. 전과목 B 이상을 받거나, 과목별로 A를 받은 학생들은 교내 게시판에 공지하고 우등상을 수여했다.
벨기에 워털루 국제학교를 다닌 소감을 아이들을 대신해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학업 스트레스 없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경험했던 소중한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전형적인 영국계 국제학교인 ISF 워털루에서 맺어진 아이들의 우정과 학부모들의 따뜻한 교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외국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고 친구들과 놀았던 경험은 나중에 아이들에게 소중한 언어 자산이 되었다.
비엔나 국제학교와 IB 디플로마의 특징
유럽에서 브뤼셀 못지않은 국제도시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IAEA를 비롯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이 있는 글로벌 도시답게 비엔나에는 국제학교도 여러 개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학교가 비엔나 북서쪽 외곽지역에 있는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스쿨(American International School, 이하 AIS)과 유엔 근처 카그란 지역에 있는 비엔나 인터내셔널 스쿨(Vienna International School, 이하 VIS)이다.
큰 아이는 이미 런던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오로지 둘째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국제학교를 물색했다. 우리의 선택은 VIS였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집을 마련하고 입학 준비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입학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혹시라도 비엔나를 비롯한 유럽 주요 도시의 국제학교 입학을 준비 중이라면, 한국에서 미리 원하는 학교를 정하고 필요한 서류를 온라인으로 제출하여 대기 순번을 확보해놓고 출국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비엔나 국제학교 Vienna International School
영국계 국제학교인 ISF 워털루와 달리 VIS는 미국계 국제학교로서 교내 시설과 방과 후 프로그램 등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다. 학생 수도 많아서 현재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11학년의 경우 15명 정도로 구성된 반이 11개나 있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공강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한국 학생은 한 학년에 3~4명 정도이고, 유엔 직원의 자녀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의 국적은 매우 다양하다.
친한 친구들끼리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공유하는데 예쁜 사진뿐만 아니라 미국 경찰의 흑인 폭행사건에 항의하는 도심 시위에 참가한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한국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탓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커밍아웃하기도 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장면도 가끔 목격된다. 자율과 방종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유럽의 국제학교에서 11학년과 12학년은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이하 IB)의 4가지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IB 디플로마 프로그램(IB Diploma Programme)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시기다. 어떻게 보면 10학년(우리 고1)까지가 마음 편한 워밍업 수준이었다면, 11~12학년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우수한 성적으로 IB 디플로마를 따야 하는 핵심 단계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VIS의 진학담당 교사와 여러 차례 상담을 했고, 영국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IB 디플로마의 첫 단계는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맞게 스스로 공부할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하이레벨 3과목(생물, 화학, 심리학)과 로우레벨 3과목(영어, 독일어, 수학)으로 결정했다. 만약 경제학이나 음악 미술 분야를 전공하기로 했다면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과목과 난이도를 참고하여 IB 과목을 고르면 된다.
IB 과정의 3가지 핵심 과제와 6가지 교과목 주제
IB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 한 번의 시험성적만이 아니라 2년 동안 꾸준히 해당 교과목 학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반영비율은 시험 76%, 내신 24%). 이와 함께 사고력을 계발하고(TOK), 장문의 에세이를 작성하며(EE), 적극적으로 사회 봉사 활동을 해야만(CAS) 추가 점수를 받고 졸업을 할 수 있다. 단순 암기보다는 비판적인 이해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IB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아이가 지금보다 몇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교육방식은 무엇일까?
한국은 한때 영어 조기교육과 영미권 유학 열풍이 불었을 만큼 전 세계에서 영어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지금도 기회만 닿는다면, 여건만 허락한다면, 영미권 국가에 자녀를 유학 보내고 싶은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대학생 정도면 모를까, 10대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서 홀로 유학을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큰 상처와 좌절을 줄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수요를 감안하여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 많은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가 설립되었다. 먼저 한국의 국제학교는 유럽의 국제학교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 스쿨(International School)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내국인을 위한 영어학교나 다름없다. 특히 특별법 적용을 받아 내국인 비율 상한이 없는 제주도의 4개 국제학교는 국내 학생 비율이 90%를 상회한다.
이에 비해 외국인학교는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자녀를 위한 유치원과 초중고 학교를 의미한다.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다수이기는 하지만, 국내 거주 화교를 위한 중국어 학교와 일본어 학교가 있고 프랑스어와 독일어 학교도 있다. 따라서 영어를 메인 랭귀지로 사용하며 영미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유럽의 국제학교와는 설립 취지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의 폐해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게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테크닉으로서의 영어는 능숙하게 배울지 몰라도 문화로서의 영어를 익히기에는 아쉬운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정원과 현원 차이를 악용한 내국인 비율 초과를 통해 귀족학교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글로벌 환경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훌륭한 자산이다. 어려서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영어와 친숙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부모가 간절히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문법과 해석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중고등 영어학습은 변별력 있는 성적 차이를 내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정작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조리 있게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삭막한 교육 현실과 답답한 대학 입시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한, 국제학교가 되었든 외국대학이 되었든 한국과 다른 교육시스템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어 몰입교육도 필요하지만, 아이의 창의력과 자발성, 협동심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교육제도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