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 Sep 07. 2020

사람과 개의 아름다운 동행, 유럽의 유별난 애견 문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생활하는 유럽 반려견들

유럽에 살면서 깜짝 놀라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어딜 가나 개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심지어 쇼핑몰에서도 개와 함께 있는 유러피언들을 목격할 수 있다. 게다가 소형견보다는 대형견을 주로 키우는 이곳 사람들이 저먼 셰퍼드나 시베리언 허스키 같은 덩치 큰 개를 데리고 내 옆을 지나갈 땐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나도 잠시 움찔하게 된다.


사실 유럽 사람들은 아이가 둘 있는 집에서 셋째가 개라고 할 정도로 유별나게 개를 사랑한다. 하루에 최소한 두 번 이상은 개와 산책을 하며 건강과 배변을 챙긴다. 아주 멀리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여행길에도 항상 개를 동반한다. 개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학교가 있어서 강아지 시절부터 그곳에서 교육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여전히 복날에 개를 건강식으로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섣불리 개를 입양했다가 학대하고 방치하거나 심지어 유기하기도 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를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유럽의 개 존중 문화는 그들만의 자연환경과 사회구조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영글어져 왔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보다 개와 관련된 시민의식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사람과 개가 관계를 맺어왔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애견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현재 어떤 법제도로 보호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인터넷에 많은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굳이 동어반복식 요약을 하기보다는, 유럽에 거주하며 개를 키우고 있는 내가 일상 속에서 체험하고 느낀 점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다. 비교를 위해 한국에서 개와 함께 보낸 개인적인 경험도 적당히 소환하도록 하겠다.


유럽에서 개를 입양하는 방법과 자격조건


나는 벨기에 브뤼셀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각각 1년씩 거주했다. 브뤼셀 시절에는 아이들이 어렸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강아지 입양을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엔나에서 살기로 결정된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개 입양을 준비했다. 아이가 유럽에서 대학생활을 하면, 정든 개와 헤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처럼 대형마트 지하의 동물병원을 겸한 애견숍에서 철창에 갇힌 생후 10주 정도의 강아지 중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면 되는 줄 알았다. 웬걸,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애견숍 자체가 불법이었다.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일부 국가들이 개 농장을 운영하면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편법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진 않다.


유럽에서 정상적으로 개를 입양하려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첫째,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 브리더 농장을 통해 입양하는 방법. 원하는 품종의 강아지가 언제쯤 태어나는지 확인해서 미리 예약을 하면 된다. 태어나면 최소 8주 이상, 길게는 4달 정도 어미개, 형제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초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친 후 필요한 예방접종을 하고 입양이 결정된다. 


둘째, 공인된 유기견 보호시설에서 개를 입양하는 방법. 파양된 성견을 입양할 수도 있고, 일반가정에서 출산하여 위탁한 강아지를 입양할 수도 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때문에 방문은커녕 예약조차 쉽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우리는 겨우 유기견 보호시설 한 곳을 방문할 수 있었고, 거기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에 시설에 위탁된 말티즈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비엔나 유기견 보호시설 <훈데베트레웅 블루마우>


유기견 보호시설에서 만난 말티즈 퍼피 4형제(좌)와 우리가 입양한 강아지(우)


유럽에서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입양하는 사람의 자격조건도 중요하다. 우리는 브리더 농장이나 유기견 보호시설에 연락하면서 그들이 확인하는 사항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야 했다. 집이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인지 공동주택인지,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지, 집에서 개를 확실하게 돌볼 사람이 있는지, 개를 집에 방치하지 않고 자주 산책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등등.


천신만고 끝에 강아지를 얻게 되어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입양과 관련된 행정절차를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개를 입양하기 전에 보호자 대상 의무교육 4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 이수증은 개 등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자와 강아지의 세부 정보가 기재된 패스포트와 분실 상황에 대비한 펫카드도 발급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할 구청에 개 등록을 하고 보유세를 내면 된다.


사실 유럽에서 개 입양을 하면서 하나하나 단계를 넘을 때마다 많은 정보와 인내심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강아지 한 마리 입양하는데 뭐 이리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입양을 결정하기에, 정작 파양률이 5% 미만에 머물렀다. 유럽에서 반려견과의 아름다운 동행은 입양이라는 첫 만남부터 충분히 준비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족처럼 개와 함께 생활하는 유러피언


개를 기르는 방식에서 유럽과 한국이 크게 다른 이유는 주거형태와 주위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들은 주로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거주한다. 공동주택이라 하더라도 7층 이하의 단지에 자그마한 야외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주택 인근에 공원이나 잔디밭이 잘 정돈된 상태로 사람들을 맞이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개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규칙적인 일상이나 다름없다. 


대형견을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에게 배변 해결은 현실적인 과제다. 이곳 사람들이 하루에 두세 번 개 산책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책은 개가 에너지를 발산하고 후각을 만족시키며 배변을 해결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도 한 달 정도 매일 꾸준히 산책을 하다 보니 그 이후로는 실내에서 대소변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새롭고 낯선 것과 마주쳤을 때 눈으로 살펴보고(시각) 손으로 만지면서(촉각) 자세히 확인한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개는 코로 냄새를 맡고(후각) 입으로 맛을 보면서(미각) 호기심을 해결한다. 시각은 인간의 20% 수준이지만 후각은 천배 이상 발달한 개에게 흙냄새와 풀내음을 마음껏 맡을 수 있는 숲 속 오솔길과 잔디밭은 최고의 놀이터인 셈이다.


우리 집 근처 공원 오솔길(좌)과 숲 속 나무 아래 놓인 개 전용 물그릇(우)


유럽인들이 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더운 여름 산책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커다란 나무줄기 밑에 '훈데-트렌케'라는 표지가 있고 그 아래에는 산책하는 개들이 마실 수 있도록 그릇에 깨끗한 물이 가득 담겨있다. 유럽 식당에서는 음료수를 반드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먹은 것에 비해 음식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하지만 함께 온 개를 위한 물 서비스는 친절하게 무료로 제공된다.  


개에게 산책이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면, 미용이나 목욕은 스트레스를 받는 고통의 시간이다. 강아지 미용시키는 날, 한국에서처럼 전용 미용숍에 맡기고 몇 시간 뒤에 찾으러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가 홀로 털을 깎이며 스트레스받을까 봐 미용사 옆에서 도우미 역할을 자청했다. 나 역시 미용 시간 내내 강아지 옆에서 어르고 달래며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즐거운 순간만이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항상 개와 함께 있는 유럽인들이야말로 반려견의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개를 키우는 것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


유럽만의 유별난 애견 문화를 상징하는 건 단연 개 학교다. 독일어로 훈데슐레(Hundeschule)라고 불리는 개 학교에서는 어린 강아지를 위한 퍼피 클래스부터 고난도의 어질리티 훈련까지 다양한 교육을 진행한다. 우리가 사는 비엔나에는 크고 작은 훈데슐레가 수십 군데나 있다. 개의 나이와 품종, 야외교육시설 유무 등을 고려하여 자신의 반려견에 맞는 훈데슐레를 선택하여 입학하면 된다.


오스트리아에서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이상 되는 개들은 의무적으로 훈데슐레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말티즈나 치와와, 닥스훈트 같은 소형견들도 대부분 훈데슐레를 다닌다. 유럽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개 학교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자 즐거움이다. 개들에게도 비슷한 체형의 또래 친구들과 만나 함께 교육받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는 <비에너 훈데슐레>라는 개 학교를 다녔다. 보통 주중 1번, 주말 1번 이렇게 주 2회 등교했고, 수업은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처음 30분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나머지 30분은 개들끼리 자유롭게 노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등록한 퍼피 클래스에는 항상 10마리 이상의 다양한 강아지들이 교육에 참여했다. 수업 중간중간에 각자의 고충이나 궁금증을 물어보면 훈련사가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사실 처음 몇 번 다닐 때만 해도 훈데슐레의 교육효과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등교 횟수가 늘수록 집중력이 높아지고 보호자와 교감하며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강아지 모습을 보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강압적인 명령보다 부드러운 보상 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니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지만, 인내심을 갖고 훈련을 진행하니 나날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비에너 훈데슐레>의 교육시간(좌)과 놀이시간(우)


개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다. 사람과는 전혀 다른 개의 본능과 특성을 잘 이해해야만 행복한 동행이 가능하다. 유럽에서는 긴 세월 동안 일상의 동반자로 개와 함께 살아오면서 사람과 반려견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밖에서 냄새 맡으며 뛰어놀고 싶어 하고 야외 배변을 하려는 개의 습성을 산책을 통해 충족시켜주되,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람에 대한 공격 본능을 순화시켰다.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한국은 지난 4~5년 사이에 개 키우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치면, 한국 사람들도 유럽 사람 못지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적으로 좀 더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강아지 입양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등록 인증을 통해 책임감 있게 개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위해 그리고 반려견을 위해 주택 인근에 공원과 녹지를 더 많이 조성해야 한다. 항상 배변 봉지를 챙겨서 깔끔하게 해결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유럽에서는 개 보유세로 충당하고 있다. 반려견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최소한의 세금을 징수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펫산업'의 규모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자신이 키우는 사랑하는 개를 위한 사료와 간식, 건강관리와 휴식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개와 함께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산책도 좋고 훈련도 좋다. 적어도 내가 직접 체험한 유럽의 유별난 애견 문화는 주인과 개가 눈을 마주 보며 교감하고 어디든 함께 동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전 15화 유럽의 국제학교, 당신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