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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06. 2020

그렇게 하루하루 아빠가 되어간다

관계와 과정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조금씩 완성되는 아빠의 모습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자 다큐멘터리 연출가인 그는, 평단의 찬사를 받은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참고로 그다음 해인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실제로 이 두 감독은 매우 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 작품은 2013년 개봉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뀌는 상투적인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전개되는 예상치 못한 스토리에 관객들은 서서히 몰입되어 간다. 나처럼 영화에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아빠의 마음은 더욱 절절하다.


영어 제목은 <Like Father, Like Son>, 우리말로 <부전자전>인데, 일본 제목을 직역한 게 훨씬 낫다. 나 같으면 아예 <그렇게 아빠가 된다>로 바꾸고 싶다. '아버지'가 말수 적어진 중년의 아저씨 느낌이라면, '아빠'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친구처럼 노는 개구쟁이 어른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기도 한 맨 위의 가족사진처럼.      


아빠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남자 어른들은 사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마치 여러 번 다녀온 것처럼 애써 자신감에 차서 행동하고 있다. 아빠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나약해지면 안 되기에.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제대로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 근본적으로 아빠라는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아빠가 되어간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다. 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는 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하는 많은 행동들은 생전의 아버지가 나를 대했던 태도에 대한 공감 또는 반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아빠가 되면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반면교사로서.


요즘 들어 부쩍 대중가요 가사에서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울컥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순이가 부르는 <아버지>라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인순이가 열창하는 <아버지>는 그녀만의 사연과 겹쳐지면서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좋아했다.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힘들게 한 아버지가 미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 함께 회상하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표현이 부족하지만 속정 은 전형적인 과거 세대의 집안 어른.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한결같이 무뚝뚝하면서 헌신적인 모습.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다가 허무하게 요절한 천재 뮤지션 신해철은 <아버지와 나>라는 자작곡에서 어렸을 적 "까마득한 산처럼 어깨가 높았던" 아버지를 읊조린다. 20대의 젊은 신해철은 장차 아버지가 될 자신의 모습을 두려운 마음으로 예감한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파격적인 노래 이상으로 울림 있는 가사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나>가 대표적이다


30대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빠가 된다. 그 순간은 느닷없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긴장되고 간절하기도 하다. 34살에 비로소 아빠가 된 나의 느낌은 정신없음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세상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함이었다. 막상 아빠가 되고 보니, 그제야 나의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순이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신해철의 내레이션을 감상하다가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진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언어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be'라는 단어가 존재해서다. 우리말로는 '이(있)다' 하나뿐이지만, 영어는 존재함을 의미하는 이 동사가 인칭에 따라 변화하며, 심지어 동사원형인 'be'까지 활용된다. 2020년 BTS가 발표한 앨범 제목이기도 한 <Be>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가벼우면서 무거운 '존재'의 철학적인 고뇌를 담고 있다.   


인간이나 사람을 뜻하는 영어단어는 Human Being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한자어 인간(人間)이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면, Human Being은 진행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동양문화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반면, 서양문화는 흘러가는 경험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동서양의 지혜를 함께 모으자면, 결국 아빠는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계속 변하며 만들어지는 존재다. 아빠라는 고정된 이미지나 아빠의 역할을 담은 매뉴얼을 찾으려 애쓰는 순간, 아빠로서 누려야 할 일상의 우연한 행복과 소소한 기쁨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만 빼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한다면 한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나는 아이들과 자주 여행을 다닌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세상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빠의 당연한 의무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가면 아이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앞장서서 주문했고, 차로 이동할 때는 행여 지체될까 봐 서둘러 움직였다. 당연하게도 이것이 내가 아는 좋은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을 마무리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초등학생 아들이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아빠는 왜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화를 내?" 아들의 눈에는 식당 종업원이나 주차요원 같은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이 안 좋게 보였던 것이다.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듯 충격이 왔다.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나서는 게 아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정작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빠와 아들의 심리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마지막 미장센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상하의 관계는 더욱이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처럼, 때로는 윗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아랫길을 지나가는 아빠에게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며 따끔한 충고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아빠라는 존재는 성장하고 만들어진다. 관계와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이 세상 아빠는 한 뼘씩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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