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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01. 2020

좋은 아빠 자격시험, 함께 보실래요?

준비된 아빠이자 소문난 육아 고수가 전해드리는 좋은 아빠의 조건

"나는 좋은 아빠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헛된 기대인 것 같다. 이제 대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난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아빠와 반대로 키울 거야"라고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니 말이다. 녀석은 마치 아빠 들으라는 듯이, 잔소리 일절 안 하고 방목해서 기를 거라나 어쩐다나 헛소리를 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젊은 시절에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야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속내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없는 어색한 부자지간이 아니라 언제든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다정한 부모 자식 관계가 되려고 노력했다. 너무 다정한 나머지 가끔은 아빠를 진짜 친구처럼 대해서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나는 좋은 아빠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이름하여 '좋은 아버지 모임'. 이들의 올곧고 선량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인터뷰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아빠들끼리 한 달에 두 번씩 모인다는데, 그 시간에 각자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찍은 사진인데, 놀랍게도 발표를 들으면서 눈물을 쏟고 있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 '좋은 아빠 되기'인 것 같다. 이게 무슨 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증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한두해 반짝 잘해서 될 일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남사스러울 따름이다. 좋은 아빠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 부모와 자식의 마음은 같지 않아서 멋쩍은 오해와 일방적인 짝사랑의 비극을 맞이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무자식 상팔자 정신에 입각해서 아예 아이를 낳지 않거나 기르더라도 자기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는 부모들. 나는 이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하지만 이번 생은 글렀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나름대로 좋은 아빠의 조건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대체로 수긍할 만한 공통점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아빠의 기준과 조건이 있어야만, 그다음에 이러쿵저러쿵 건설적인 제안과 토론이 나올 수 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라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내 자랑 같아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지만, 20여 년 아빠로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다른 아빠들에게 한결같이 "내가 졌소"라는 고백을 들을 만큼 끔찍하게 아이들을 키워왔다. 우리 가족이 단골로 가는 미장원 원장님은 자기가 만난 수천 명의 아빠 고객 중에서 내가 단연 자상하다고 목에 힘을 주어 증언했다.


뿐만 아니다. 나는 아들과 딸을 3년 터울로 키우며 사내아이와 여자아이의 오묘한 차이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비교적 덜 바쁜 직장을 다닌 덕택에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챙겼고, 긴 시간 휴직을 하며 많은 날들을 함께 보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육아전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하고 좋은데 힘들다는 투정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너무나 힘들다는 육아 시절이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쯤 해서 자격 시비는 마무리된 것으로 생각하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믿거나 말거나' 자격시험의 출제기준과 경향을 간략히 브리핑하도록 하겠다. 총 10개 문항을 읽고 100% 공감하며 실천하고 있으면 10점, 절반 정도면 5점, 이렇게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 점수를 쓴 후에는 반드시 아내와 아이에게 검증을 받고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좋은 아빠 자격시험은 3단계(예비 아빠, 육아 아빠, 청소년 아빠)로 구성되어 있다. 나처럼 모든 과정을 수료했으면 10문항 모두 채점해도 되고, 현재 어린아이와 놀면서 육아 중인 아빠라면 그 단계까지의 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된다. 더 이상 설명하면 예능이 다큐로 변할 수 있으므로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자.

 



자, 이제 곧 당신은 <좋은 아빠 자격시험>을 보게 된다. 수능 못지않게 신중하게 문제를 출제했으니,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기 바란다.


1.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문항당 10점 만점, 총 40점)
   - 처음 보는 아이라도 귀여우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눈을 맞추며 까꿍 한다.
   -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마냥 울면 무슨 일인지 걱정되고 도와주고 싶다.
   - 친구 결혼 소식은 무덤덤하지만, 아이 돌잔치 연락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 직장에서 승진이나 사내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웬만하면 칼퇴근한다.

2. 육아기 좋은 아빠의 조건(문항당 10점 만점, 총 30점)
   - 주말에 아이들과 놀 계획을 짜느라 금요일 밤이 설렌다.
   - 밤마다 아이와 잠자리에 함께 누워 30분 이상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다.
   - 별점 4점 이상의 극장 애니메이션이 개봉되면 반드시 아이와 함께 관람한다.

3. 청소년기 좋은 아빠의 조건(문항당 10점 만점, 총 30점)
  - 매년 최소 1박 이상의 여행을 아이와 단둘이 간다.
  - 아이가 관심을 두는 스포츠나 대중문화를 주제로 1시간 이상 신나게 함께 떠든다.
  - 아이의 친구관계를 꿰뚫고 있고 베프와는 밥 한 끼 할 정도로 친하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시간이다. 좋은 아빠로 인정받기 위한 커트라인은 90점이다. 당신이 90점 이상을 받았다면, 누가 뭐래도 '찐' 좋은 아빠다. 80점 이상이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꿈에 그리던 좋은 아빠 반열에 오를 수 있다. 60점 미만이라면? 부디 예비아빠이길 바라며 아이를 낳더라도 가급적 하나로 만족하기를 권장한다.


그렇게 잘난 척하던 나는 몇 점이냐고? 내가 매긴 점수로는 90점을 겨우 넘겼는데 아이들과 크로스 체크해보니 80점대에 머물렀다.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아빠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이 글을 쓰면서 아이들과 깔깔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좋은 아빠가 되길 원한다면, 당신만의 시험문제를 작성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라.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비밀의 문이 살포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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