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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03. 2020

수능 본 저녁, 아이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2018년 11월 15일, 아빠의 시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그날

2020년 12월 3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 1381개 시험장에서 거행되었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방역 비상상황 속에서 무사히 잘 마무리된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열악한 학습 환경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한 수험생과 묵묵히 아이 뒷바라지를 해온 학부모님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8년 11월 15일,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고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베이비 우리 아들이, 어느덧 만 18살의 풋풋한 청년으로 성장해서 2019학년도 수능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날은 20여 년 동안 이어진 아빠의 시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기도 했다.


수능 직전에 본 모의고사 성적이 제법 좋았기에, 수능일까지 컨디션 조절만 잘하자고, 나는 아이에게 신신당부했다. 행여 몸살감기라도 걸리면 그 많은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한 결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수능 전날, 아내와 나는 보온이 잘 되는 도시락통을 사 와서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들었다. 수험생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밖에 더 있겠는가.


재학생들이 수험생들을 격려하는 수능 출정식은 한국만의 웃픈 입시 문화다


수능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시험 고사장인 인근 고등학교로 갔다. 격려하는 말이 왠지 부담이 될 것 같고, 긴장을 풀게 하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가 분위기만 썰렁해질 수도 있어서 그냥 말없이 운전했다. 재학생들의 응원 함성으로 소란한 정문 근처에 아이를 내려주면서 파이팅하자고 한마디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상의 모든 신과 조상님께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이에게 힘을 모아 달라고.   

  



서둘러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아이가 없었다. 어디냐고 전화했더니, 택시 잡기가 힘들어서 그냥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단다. 집에 들어오는 아이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생각만큼 잘 보지 못했구나 짐작이 갔다. 자기 방에서 좀 쉬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아빠는 거실에서 TV 보고 있겠다고 말했다.


조금 있다가 역시 급히 회사일을 마무리한 아내가 귀가했다. 함께 거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그래 시험은 어땠어?"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어는 이랬고, 영어는 저랬고 과목별로 천천히 설명하던 아이가 울먹울먹 하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끄억끄억 흐느낌이 한동안 멈출 줄 몰랐다.


당황한 내가 화장실에서 얼른 수건을 가져와 아이에게 주었다. 이 순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우는 아이를 보는 나와 아내의 마음도 찢어질 듯 아팠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 정말 고생했고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제 그만 눈물을 멈추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이보다 힘든 일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이제 진정하고 푹 쉬어도 된단다.


나중에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해진 아이가 말하길, 1교시 국어 지문을 읽다가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못 풀었고 그 여파가 다음 교시 영어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2018년에 치러진 수능 1교시 국어 영역의 난이도는 두고두고 논란이 되었다. 특히 31번 문제는 출제를 담당한 교육과정평가원장과 수능본부장이 통렬히 반성한다며 거듭 사과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31번 문제는 어처구니없게도 지문 독해능력과 아무 상관없는, 물리 지식을 묻는 문제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만점을 받거나 전과목 1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있으니, 이 모든 설명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여 휴식을 취한 아이는 재수를 해야 할지 평소 생각해오던 외국에서 공부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아이는 중학교를 벨기에 국제학교에서 보냈던지라, 영어 공부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었 현재 런던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씩 아이와 안부전화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고 1주일에 2번 정도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경영학을 전공하다 보니 재무와 회계 수업을 듣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서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툭 던지는 한마디. "아빠,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넘지 못하는 벽이 있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선 힘들지만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와서 기분이 좋아"    




돌이켜보니, 나에게도 마냥 괴로웠던 취업준비생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던 27살 무렵이다. 다큐멘터리 PD를 하고 싶던 나는 당시 제일기획에서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방송 Q채널에 지원서를 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포함 온갖 서류를 다 요구하는 서류전형과 전공시험 그리고 인적성 테스트를 통과하고 최종 면접까지 무사히 마쳤다.


합격자 발표날,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전화소리만 애타게 기다렸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기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전화벨은 하루 종일 울리지 않았다. 며칠 동안 시름시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그런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련했을까. 세상 무너진 듯 허탈해하는 아들을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함께 외식도 하고 용돈도 주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상심한 아들 몰래 아버지가 제일기획에 찾아갔단다. 인사담당 직원을 수소문해서 만나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해서 떨어졌는지 뭐가 부족했는지 차분히 물어보았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65세였다.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아버지를 배웅하면서, 어르신을 보니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꼭 손을 잡아드렸다고 한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으면서, 나는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에 마음에 먹먹해졌다. 얼마나 아들이 힘들어 보였으면 그렇게라도 직접 확인해서 알려주고 싶으셨을까. 아버지가 전해준 불합격 원인을 차분히 분석해보니 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무턱대고 억울해만 하던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열심히 준비해서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추억을 담은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가 성장하고 좌절하고 다시 희망을 찾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빠가 된 나의 마음은 항상 아이 편이다. 아이가 힘들면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고, 아이가 뭔가를 성취하면 그저 대견할 따름이다. 수능의 아픔과 좌절을 딛고, 지금은 자기 갈 길을 씩씩하게 가고 있는 우리 아이가 자랑스럽다.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겪겠지만, 한결같이 응원하고 격려할 것이다.


아빠의 시간은 똑바로 가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한다. 내가 아빠로서 아이에게 베푸는 사랑은, 아마도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수십 년 전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가 내게 전해준 따뜻한 배려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아빠라는 존재는 시간의 무게를 뛰어넘어 이어진다. 단지 세월이 변하면서 표현하는 방식만 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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