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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Feb 12. 2021

인공지능,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다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알파고와 지능형 로봇이 동행하는 인류의 미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21세기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야심 찬 프로젝트 중 하나다. 1999년 병렬 연산이 가능한 GPU(Graphic Processing Unit)가 컴퓨터에 처음으로 장착되면서, 인공지능 개발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빅데이터를 최적의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고 학습하여, 필요한 순간마다 판단하고 예측하는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의 가공할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가 펼친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특히 한국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당시만 해도 슈퍼컴퓨터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 꿇은 인간계 고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제는 기력 향상을 위한 최고의 조력자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 제25회 LG배 기왕전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신민준 9단 역시 매일 밤 인공지능으로 커제의 바둑을 반복 분석했다고 고백했다.


고성능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 연구와 함께, AI의 궁극적인 모델인 인간의 뇌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과 각각의 뉴런의 연결하는 100조 개의 시냅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행위를 뇌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수백억 개의 뉴런이 시냅스라는 연결망을 통해 화학 신호인 신경전달 물질을 쉴 새 없이 주고받으며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인 것이다.


EU가 2013년부터 10년 동안 10억 유로를 투입하여 진행 중인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


최근에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의문을 풀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13년부터 10년 동안 10억 유로를 투입하는 초대형 연구 프로그램인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의 성과물로는 독일 연구팀이 제작한 3D 뇌지도 '빅 브레인'이 돋보이는데, 800억 개의 뉴런을 분석한 매우 세밀한 뇌 해부도를 만들었다. 2020년 국내 KAIST 연구진도 뇌 구조를 정확히 관찰할 수 있는 3차원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신비스러운 영역으로 남아 있던 뇌 구조와 신경세포의 작동원리가 차례차례 밝혀진다면, 뇌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고도의 인공지능이 등장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상상력 풍부한 영화감독과 작가들이 이미 예견했던 그날이 오게 되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사뭇 궁금하다. 금기의 영역인 인간의 정신세계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인공지능의 행보를 함께 감상해보자.




2015년 2월 국내 개봉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본 관객이라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을 펼친 앨런 튜링이라는 실존인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영국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미션을 수행했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훗날 현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생각하는 기계'라는 인공지능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인공지능 연구는 과도한 기대와 암울한 비관 사이를 오가며 부침을 거듭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뇌신경을 본뜬 심층 연결망이 고안되고 이에 부응하듯 컴퓨터의 정보처리장치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자, 인공지능 개발은 마침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파고의 출현을 통해 AI의 빅데이터 분석능력과 판단 및 예측능력이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지만 그 여파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가로 세로 8줄씩 64칸으로 격자 배열된 보드에서 6종류의 피스 16개로 각자 플레이하는 체스는 구조적으로 경우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다음 단계로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에 도전장을 낸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구글 딥마인드의 CEO이자 알파고의 핵심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어린 시절 체스 천재로 불렸고, 세계 최고의 두뇌게임대회인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에서 5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가 보기에, 바둑이야말로 AI가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류 최고의 두뇌게임이었다. 알파고가 세계 바둑 일인자 이세돌 9단을 꺾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승리의 순간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알파고>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5번에 걸쳐 세기의 대결을 펼쳤고,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했다


아마 3급 실력으로 누구보다 바둑을 사랑하는 나는 이세돌과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간과 AI의 대국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심오한 두뇌게임인 바둑에서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특유의 기풍과 반상의 미학이다. 중앙을 중시하고 두텁게 세력을 쌓는 다케미야의 우주류와 끈질긴 기풍의 이중 허리로 당대를 호령한 린하이펑의 기보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본이다. 천재와 뚝심이 결합한 '돌부처' 이창호, 현란한 행마의 '제비' 조훈현, 세계 최고의 공격수 '일지매' 유창혁, 아무리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 서봉수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무엇보다도 1986년 기성 조치훈과 도전자 고바야시 고이치가 벌인 타이틀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 대국이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휠체어에 앉은 채 목숨을 건 투혼을 불사른 조치훈의 모습에서 바둑에 임하는 절대고수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제한시간이 각자 8시간이어서 이틀에 걸쳐 1국을 두던 시절, 최선의 착수를 위해 1시간 넘게 초집중 상태로 수 읽기를 하는 프로기사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전율하곤 했다.


그러나 2016년 구글이 데이터 분석과 딥러닝을 위해 특별 개발한 TPU(Tensor Processing Unit) 48개로 무장한 인공지능 알파고 앞에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인간계 바둑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입력된 수만 보의 기보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력해진 알파고에게 오욕칠정의 한계를 가진 인간의 뉴런과 시냅스는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동양의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바둑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크게 바뀌었다. 인간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온 AI 덕분에 바둑기사들은 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복기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록 알파고에게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지만, 오히려 바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더욱 커졌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웹툰 기반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이자 실패한 바둑기사 장그래가 던진 한마디에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초보 단계의 인공지능이 이미 많이 존재한다. AI 센서가 달린 하이엔드 전자제품을 비롯해서 음성인식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를 언제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2억 대 이상의 음성인식 제품이 보급되어 있고, 2025년까지 4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음향 모델과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AI 스피커는 자연어 처리와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이용자와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다.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음성인식 AI는 LG U+의 IoT 서비스인 네이버 클로바다. 아침에 일어나면 "클로바, 오늘 뉴스 알려줘", "클로바, 오늘 날씨 어때?"로 시작하고, 아침식사를 하면서 음악을 듣기 위해 "클로바, 벅스 차트 틀어줘"라고 주문한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유인나 음성의 AI에게 "클로바, 네 목소리가 아름다워"라고 했더니, 고맙다며 감사의 표시로 시키지도 않은 답가를 들려준 적도 있다.


조만간 우리 곁에 찾아올 지능형 로봇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만간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까지 읽을 수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도 출시된다고 한다. 자연어 학습을 통해 고도로 지능이 강화된 음성 기반 AI가 뜻밖의 유머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날도 멀지 않았다. 여기에 최근 논란이 된 리얼돌처럼 인간의 모습을 정교하게 본뜬 지능형 로봇이 등장한다면, 1인 1 모바일폰 시대가 열렸듯이, 1인 1 지능형 로봇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똑똑한 지능형 로봇을 갖고 있는지가 부의 척도가 되는 사회, 자신과 기력을 맞춘 알파고와 치열한 진검승부를 벌이며 여가를 즐기는 문화, 비서이자 친구이자 연인으로 하루 24시간 내 곁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AI를 하나 이상 보유한 가정. 머지않아 이런 세상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이미 인간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온 인공지능을 현명하고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지혜와 집단지성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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