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 Nov 29. 2020

소셜 미디어를 장착한 정치, 길 잃은 저널리즘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정치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무현과 트럼프, 너무나 대조적인 성향의 한국과 미국 대통령에게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 재임기간 내내 주류 언론과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대결의 방향이 정반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이 주류 보수언론의 편파 왜곡 보도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면, 트럼프는 주류 진보언론의 송곳 비판에 트위터 정치로 대응하면서 치적 홍보에만 급급했다.  


정치와 언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으로 일 할 기회가 주어지는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언론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기를 희망한다. 언론은 시민들에게 관심이 큰 정치분야에서 다른 매체에 비해 신속한 보도와 분석을 하기 위해, 밤낮으로 정치인들에게 고급 정보를 얻으려 애쓴다. 이러한 밀당 과정 속에서 정치와 언론은 유착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정치가 언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다시 언론이 여론의 흐름을 정치권에 피드백하는 지금까지의 상호작용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치와 시민이 직접 소통하는 횟수가 급증하면서, 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속하거나 평상시 국민들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로 소셜 미디어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정치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기존 뉴스매체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일차적인 전달통로가 되고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저널리즘이 외면받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지 방해가 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를 특징짓는 이른바 '소셜 미디어 정치'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소셜 미디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6년부터다. 참고로 우리는 소셜 미디어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줄여서 SNS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어떻게 의미가 다를까?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가 자신의 생각을 주위에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반면 SNS는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초점을 맞춘다. 소셜 미디어의 주인공이 1인 저널리스트인 당신이라면, SNS의 주인공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 자체다.   


스마트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반비례하여, 신문과 방송 등 기존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뉴스매체들은 실천 여부와 무관하게,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를 한다. 정치인들의 주의주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게이트키핑'이라는 여과과정을 거쳐 비교 분석하고 정제된 형태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취재보도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무시되거나 왜곡되었다고 불만을 품은 정치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직접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팬덤을 지닌 정치인들의 소셜 미디어에 네티즌들의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급기야 매스 미디어가 자체 취재보다 유명 정치인의 소셜 미디어에 실린 글을 전달하는데 급급한,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주류 언론을 비난하며 자신만의 트위터 정치로 세상과 소통했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단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다. 선거 과정에서도 소셜 미디어의 파급력을 최대한 활용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국가기밀부터 시시콜콜한 개인감정까지 트위터를 통해 전달했다. 정치의 희화화냐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이냐 찬반이 분분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주류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매체와 소셜 미디어를 선택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인 행동이었다.


한국에서도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정치가 제철 맞은 듯 활발하다.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한 내용보다 진중권 같은 평론가가 페이스북에 쓴 문장이 뉴스 상위에서 검색되는 날도 종종 있다. 언론이 친절하게 인용 보도해주니, 기고만장한 평론가들은 더욱 자극적인 제목과 문장으로 화답한다. 매스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시민들에게 양질의 정치보도를 하기는커녕, 갈등과 대립의 진영 대결 속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만 깊게 만들고 있다.     


소셜 미디어 정치의 도구는 게시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은 10여 년 전 보수정권 시기에 진보 정치인과 평론가들이 팟캐스트를 활용하여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했다. 진보정권이 들어서자 이번에는 보수 정치인들과 평론가들이 유튜브 방송을 통해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유튜브 1인 정치방송 전성시대를 이했다. 전현직 정치인과 평론가들이 너도나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구독자 확보에 여념이 없다.


소셜 미디어 정치의 또 다른 모습인 유튜브 정치방송에서 나는 희망보다 절망을 더 많이 느낀다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제외하면 거의 보수일색인 유튜브 정치방송은 건전한 공론장 조성과 전혀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판을 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노골적으로 상대편을 조롱하고 비난한다. 유튜브 방송내용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다른 소셜 미디어로 확산되면서 사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가짜정보가 진짜뉴스로 둔갑한다.


이러한 극심한 혼란을 타개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소셜 미디어에 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조작된 이미지와 거짓정보에 대해서는 차단과 경고표시 등 강력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프로페셔널 언론매체에게 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도 시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을 만큼, 수준 높고 품격 있는 저널리즘을 제공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수시로 팩트체크 결과를 발표하고, 정치 양극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페북 게시글과 트윗 전달을 지양하고 자체적인 취재와 분석을 통해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관점에서 각각 상이하게 나타나는 소셜 미디어 이슈를 함께 보여주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주는 섹션을 흥미롭게 구성할 수도 있다.




21세기의 역사적인 출발을 알리는 2001년 2월, 나는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23년 동안의 배움의 길을 마무리한 셈이다. 아마추어 연구자의 설익음을 털어내고 프로페셔널 학자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던 나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저널리즘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로 2000년 2월에 창간한 <오마이뉴스>와 "관점이 있는 뉴스"라는 구호로 2001년 9월 창간된 <프레시안>은 기존 저널리즘 문화에 식상함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나는 논문에서, 온라인 저널리즘이 심층적인 탐사보도와 다양한 관점의 맥락보도를 강화하며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연하게 기사를 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궁극적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대안언론으로서 기존 뉴스매체와 생산적인 경쟁을 할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창간 초기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이후 기대했던 것만큼 매체 영향력이 확장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온라인 전문 뉴스매체의 잠재력은 기대만큼 터지지 않은 대신 온라인을 통한 1인 미디어 시대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왔다. 신문 구독률과 방송 시청률은 크게 떨어졌지만, 이제 우리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주요 매체의 뉴스를 접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언론 고유의 의제설정 기능과 환경감시 임무는 예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문제는 언론이 소셜 미디어에 담긴 정치인과 평론가의 코멘트를 단지 전달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의 자긍심과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기사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칼럼을 통해 의견을 제시한다. 언론은 불굴의 의지로 사건을 취재하고 논리적으로 견해를 밝힐 때에만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가야 할 길을 잃은 채, 안이하게 소셜 미디어 인용만을 남발하는 저널리즘이 우리 사회에 굳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이전 09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