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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15. 2020

유전공학의 슬픈 초상화, 황우석 신화에서 몰락까지

21세기 바이오 생명공학의 성과는 과학 저널리즘으로 뒷받침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표적으로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가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이다.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유전공학의 성과는 두 가지 방향에서 감지된다. 하나는 줄기세포 배양을 통한 생명체 복제와 난치병 치료이고 다른 하나는 동식물 유전자 변형에 의한 식량난 해소다.


나노기술, 재생의학 등과 결합된 21세기 유전공학은 고도화된 줄기세포 배양을 토대로 획기적인 생명 연장을 가능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유발 하라리가 예언한 불멸의 <호모 데우스>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복제인간 클론의 시각에서 장기이식을 다룬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암시하듯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역시 필요하다.


21세기 인류가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사실상 벗어나게 된 데에는 유전자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식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 결과, 2010년에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인 반면 비만으로 죽은 사람이 300만 명이었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식량난을 해결했다.


이처럼 엄청난 가능성과 한계를 지닌 유전공학이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안타깝게도 200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였다. 국민적 영웅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황우석 사건은 유전공학의 장밋빛 전망에 대해 냉정한 점검이 필요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한국 사회는 이른바 '황우석 신드롬'에 들떴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가 체세포 복제기술로 소(영롱이)와 개(스너피)를 연이어 복제하고, 2004년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고 어린이용 위인전도 출간되었다.


황우석 신화는 본인뿐만 아니라 언론계와 정치권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을 방송하면서 난자 채취 과정의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황우석이 즉각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공직 사퇴라는 카드로 응수하자, <PD수첩>은 대다수 국민의 지탄을 받으며 프로그램 광고가 중단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참여 연구원에게 찾아간 MBC PD가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며 강압적으로 취재했다는 내용을 YTN에서 보도하면서 <PD수첩>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제작진이 준비한 후속 편은 방송이 중단되었고 담당 PD는 경질되었으며 MBC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저녁 메인뉴스에서 자사의 <PD수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극적인 반전이 다시 일어났다. 포항공대 생물학 정보센터(BRIC)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증거가 유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12월 15일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 첫머리에서 이런 앵커 멘트와 함께 체세포 줄기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구 관계자의 폭탄발언을 전했다.


<PD수첩>이 후속 편으로 준비한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가 메인 뉴스가 끝난 직후인 밤 10시부터 방송되는 순간, 국민들은 숨을 죽이며 시청했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을 흥분시켰던 유전공학 사기극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반신불수의 장애인이나 난치병 환자들에게 구세주로 떠받들어졌던 황우석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었고 최악의 논문 조작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2005년 12월 15일 밤 10시부터 70분간 특별 편성된 <PD수첩>의 시청률은 13%를 뛰어넘었다

   



2005년 겨울 대한민국은 '황우석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양분되었다. 크고 작은 모임마다 대화의 주제는 황우석이었고, 대개의 경우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불편한 설전을 벌이곤 했다. 황우석이라는 스타 과학자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정치인들이 대화 주제로 얽히고설키면서 논쟁은 더욱 꼬여갔다.


당시 나는 언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PD 저널리즘의 사회적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었다. <PD수첩>에서 황우석 사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 누구보다 이 사건의 파장과 언론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5년 12월 16일에 방송된 KBS의 <생방송 심야토론> "황우석 쇼크, 진실은 무엇인가" 편에 언론학 전문가로 섭외된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해서 내가 주장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황우석 교수는 대단히 미디어 친화적인 과학자로 언론의 과학 전문성 부족을 악용했다. 정권 홍보 차원의 무분별한 지원과 감독 부재도 한몫했다. 연구윤리와 취재윤리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었을 때, 대부분의 언론은 취재윤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진실과 국익은 함께 가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과학 보도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기자협회보 칼럼을 통해 언론사별로 잘잘못을 평가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 위해서는 두리뭉실한 비평보다 따끔한 실명비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PD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는 "황우석 사건 관련 TV 보도와 PD 저널리즘"으로 발제를 했고, <과학 저널리즘과 사회문화적 의식구조 차원에서 본 황우석 보도>라는 제목의 방송위원회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황우석 사태'의 비극은 과학에 문외한인 방송 PD가 어찌 대과학자의 업적을 평가할 수 있느냐는 '아마추어 검증론'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취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궁지에 몰린 대과학자는 아마추어 PD에게 고백했다. "선생님,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 잘할게요."


21세기 인류를 질병과 기아로부터 구원할 구세주로 칭송받는 유전공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줄기세포 배양을 통한 난치병 치료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과도한 성과 중심주의 속에서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과학 저널리즘 차원의 철저한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이 본연의 환경감시 기능에 충실하고 이런 언론의 역할이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존중받는 사회에서, 21세기 바이오 생명공학은 인류의 성장과 행복에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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