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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an 22. 2022

망각

시인 김소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별 후에도, 목숨을 버리고 싶은 이별 후에도, 우리는 살겠노라 호흡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한다. 웃기면 웃고, 가려우면 긁고, 다리가 저리면 고쳐 앉는다. 그 속에서 그럴듯한 망각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지만,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가역可逆작용은 불완전하다.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통증과 환희, 쾌감과 분노 따위가 느껴지지 않을 뿐, 즉, 그 자리가 상처가 아닐 뿐, 흉터로서 남는다. 사랑하는 동안 급하게 흘러갔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무능하게 바라보면서, 시간의 완급을 수십 번 되풀이하여 바라보면서, 흉터가 비로소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망각이라고 말한다.



 




필사2일 2022.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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