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별 후에도, 목숨을 버리고 싶은 이별 후에도, 우리는 살겠노라 호흡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한다. 웃기면 웃고, 가려우면 긁고, 다리가 저리면 고쳐 앉는다. 그 속에서 그럴듯한 망각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지만,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가역可逆작용은 불완전하다.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통증과 환희, 쾌감과 분노 따위가 느껴지지 않을 뿐, 즉, 그 자리가 상처가 아닐 뿐, 흉터로서 남는다. 사랑하는 동안 급하게 흘러갔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무능하게 바라보면서, 시간의 완급을 수십 번 되풀이하여 바라보면서, 흉터가 비로소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망각이라고 말한다.
필사2일 2022. 0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