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되도록 에돌아간다. 다리를 움직여 걷고 몸으로 걷다가 곧 마음으로 걸어본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머뭇댄다. 멈칫거리는 그 순간 플랫폼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짧은 순간을 이기면 걷기가 시작된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걸어 올라간다. 종착점까지 어떻게 하면 더 둘러갈 수 있는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걷는다. 새로운 계단을 찾아내기도 하고 낯선 골목에 들러보기도 하고 그러다 기분 좋아지는 길을 만나면 환희에 가깝다.
도시 한복판에서 철길을 지난다. 소나무 숲을 잠깐 지나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은 꽤나 낭만적이다. 옆으로 소나무 숲길이다. 흰 눈이 소복하고 선로 위는 눈이 녹아 촉촉하다. 귀를 대고 봄을 기다린다. 먼저 새끼발가락부터 꽁꽁 얼어버린다. 오물오물 발가락은 따뜻한 봄을 그리워한다.
걷다 보면 아무것도 없다. 다 내려놓고 어느새 터벅터벅 혼자 걷고 있다.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지고 관대해진다. 새의 소리가 들리고 바람소리도 들린다. 헝클어진 마음의 끝을 찾을 수 있으며 풍경의 질감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으니 잔잔한 평화를 이룬다. 보행의 그 걸음이 눈 오는 날이면 더 뽀드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