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좋아
길을 걷다 털을 발견 하면 줍고 본다. 줍는 기준은 단 하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가. 떡져있거나 지저분한 털은 그대로 둔다. 깔끔하다면 줍는다. 찍는다. 이후 손에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담는다. 대부분 손에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방이 비어있다면 상관없지만 내용물이 차있는 경우 변형될 수 있기에.
운동 갔다 돌아온 아빠 손엔 종종 깃털이 들려있었다. 그때마다 물었다. '이건 누구 깃털이야?' 각기 다른 새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지만 제일 많았던 건 비둘기, 까마귀, 까치였다. 계속 듣고 보다 보니 나도 대충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반짝거리는 광이 나면 까치, 까맣기만 하면 까마귀, 회색 빛깔이 돌면 비둘기. 하지만 계속 질문했다. 어디서 주웠고 누구 깃털인지. 항상 묻고 항상 대답해준다. 아빠와 나의 깃털 대화.
함께 운동 나간 길에서 깃털을 발견하면 이야깃거리는 더 풍부해진다.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시작된다. 잡아먹힌 걸까 털갈이를 한 걸까. 사람 머리카락 빠지는 것처럼 얘들도 다시 깃털이 자라나겠지. 얘낸 자라는데 얼마나 걸릴까. 빠질 때 아무런 느낌도 없을까? 염색하면 두피에서 뿌리 자라나는 것처럼 얘 내도 깃털 뿌리가 자라나 색을 밀어낼까? 등등. 질문을 쏟아낸다. 정확한 답을 듣지 못해도 좋았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단 그 자체로 이미 행복했으니까.
털을 보며 좋아하는 딸 모습이 좋았던 아빠와 털 주워오는 아빠가 귀여웠던 딸. 그렇게 점점 털은 수북해졌다. 털을 주워오면 내려놓는 그만의 장소가 있다. 거기에 털이 얹어있는 날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물티슈로 깨끗이 닦여있는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털. "이건 무슨 털이야?!" 라 묻고 답을 들었다면 내 털 통으로 들어간다. 통이 털으로 가득 차게 되면 더 넓은 곳으로 이사시켜야지.
제일 좋아하는 갈색 털. 온갖 방정이란 방정은 다 떨며 이런 털은 어디서 주울 수 있냐며 같이 가자 말했다. 그에 반해 차분히 돌아온 대답. 털갈이한 건지 하나만 빠져 있었고 자주 볼 수 있는 털은 아니라 했다. 인적이 별로 없는 길에서 주웠다고. 그 길을 혼자 걷다 털을 발견하고 주운 후 가방에 넣었겠지. 터벅터벅.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둥기 둥기 챙겨주진 않지만 자식이 좋아하는 건 다 기억하고 있는 아빠. 털을 좋아한다기보다 털을 주워다 주는 귀여운 마음을 좋아한단 걸 아빠는 알까.
친구들과 걷다가도 털을 발견 하면 줍는다. 친구들이 '어 저기 털!'이라 알려줄 정도니 말 다했다. 주운 후 사진을 찍고 아빠에게 보낸다. 이건 무슨 털인지 퀴즈를 낸다. 퀴즈라기 보단 질문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온다. 문장이 아닌 단어로. 비둘기면 비둘기 까치면 까치. 그럼 난 이모티콘으로 답한다. 귀가 후에도 한번 더 묻는다. 이게 왜 그 새의 깃털인지. 이 털을 어디서 주웠는지 오늘 뭘 먹었는지 등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안 물어봤지만 말한다. 난 말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쫑알거리며 일상을 공유한다. 들어오기 전 사진으로 대충 예고편을 보내 놨으니 귀가하면 본편 시작이다.
수북한 털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빠의 사랑이 담긴 털. 돈 주고 살 수 없는 털. 털로 인해 알게 되었다. 부모는 항상 자식을 생각한다. 어디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