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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묘링 Aug 06. 2021

날 때부터지랄 맞던자식

작은 자식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하나 있다. 그는 나보다 3년 일찍 태어났고 내가 태어나자 '오빠'란 호칭을 얻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 부모님 말론 운명을 잘 받아들인 편이라 한다. 날 때부터 얌전했고 날 때부터 지랄 맞던 자식. 이 한 문장이 우리 남매의 성향을 말해준다. 


겉 지랄-속 지랄-겉 지랄

'눕히기만 하면 울어서 바닥에 내려놓을 수 없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내 등엔 등 센서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애가 누굴 닮아서.. 란 말이 절로 나왔다.' 외모는 아빠 판박이. '오빤 얌전한데 동생은 왜 이럴까 싶었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우리 남매를 보며 혼란스러웠던 걸까. 부모님은 그렇게 지랄 맞은 딸자식 안고 다니느라 한고생 하셨다. 동생에게 온갖 신경이 가 있는 상황에서 관심받기 위한 행동을 보였을 법도 한데 나와 피를 나눈 그는 전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데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지랄 맞게 울어대던 딸자식은 의식이 생겼다.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그가 가는 길을 어디든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그렇게 오빠 따라쟁이가 되었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그는 동생을 챙겨 다녔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 조차. 부모님은 그런 자식들을 보며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한다. 사춘기 시기가 되자 성향이 변했다.


지랄 맞던 딸은 얌전해졌다. 사춘기의 힘은 굉장했다. 물론 얌전해졌다고 해서 공부에 집중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집안에서의 말수가 줄었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중2병과 사춘기가 겹쳐왔던 상황이라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 하루는 시끄러웠다. 속 지랄. 속으로만 시끄러웠다. 그렇게 쭉 고등학생. 대학생. 졸업반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며 다시 돌아왔다.


타지에서 대학생활, 무사 졸업 후 본가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왜 타지로 대학생활을 했는지, 대학생활은 어땠는지에 대해선 또 할 말이 많은데 그 또한 차차 풀어나갈 예정이다. 사회 속 난 분명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직장엔 꾸며진 내가 있었다. 가면을 쓴 나. 사회초년생은 항상 웃었고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니 병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왔다. 그렇게 난 겉 지랄로 돌아왔다. 숨통이 트였다.


적당히 거절했고 마냥 웃지 않았다. 내 주관을 어필하고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 직원들과의 사적인 모임엔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더 중요했다. '날 싫어하면 어쩌지' '참석하지 않았다가 뒷말 나오면 어쩌지' 싶어 억지로 참석하던 때가 있었다. 뭐 어떤가. 그들은 내 삶을 살아주지 않고 이게 바로 나란 자식의 성향이었다. 누군가의 미움이 두렵지 않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지랄 맞은 자식으로 사는 지금이 참 즐겁다.


적당히 직장 다니다 적당한 시기에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걸 원하던 부모와 그 뜻을 보란 듯 거르는 중인 자식. 부모가 되는 걸 선택하기보다 아직은 부모의 품에서 아양 떨며 지내는 게 좋은. 다 컸지만 아직도 '엄마!! 아빠!!' 부르며 따라다니는 난 지랄 맞은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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