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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Aug 04. 2021

낭만이 말을 거네

반절의 문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을 떠난 것은 썩 잘 한 선택이었다.

홍콩의 여름은 한국에 비해 무더웠지만, 타인의 이목에 신경 쓸 일 없었고, 듣고 싶은 언어만 선택해서 들어도 되는 환경은 참으로 편리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실수나 상처가 두렵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를 키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가능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당당해 보였지만, 달팽이처럼 등에 보이지 않는 집을 이고 다녔었고, 여차하면 그 집에 살짝 들어가 숨어있다가, 꼭 필요할 때만 나오려고 했었다. 

그 시절 나는 남에게 강해 보이기 위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실수와 상처가 두렵지 않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나이며, 나를 키울 수 있는 것도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입에 대지도 못하던 술을 음악과 함께 즐기게 되었고, 혼자 와인잔을 기울이는 낭만의 밤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블로그 기록했던 ‘낭만 노트’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파리에 대한 로망' '봄날에 대한 로망''조국에 대한 로망''바이크에 대한 로망' '명품을 향한 로망' 등등..

일상생활에서 수도 없이 사용되는 '로망'이라는 단어..


로망[프랑스어] roman 명사

<문학> 12~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발생한 통속 소설. 애정 담, 무용담을 중심으로 하면서 전기적(傳奇的)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말] 로맨스(romance).


하지만 요즘 흔히 사용되는 뜻은 꿈이나, 소망, 사랑, 낭만 같은 뜻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낭만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일본어 외래어 표기 과정에서 ロマン(로망(浪漫))이 낭만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기억의 영속성이나, 객체성, 판단력의 객관성이나 역사성, 이런 것들이 모두 의심받는 시기와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 '로맨스'라는 자의적 공간에 의지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 1세기 반전에 미국 문학의 한 획을 긋는 '나다니엘 호손'의 '로맨스 론'을 보면, 소설 작품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백일하에 드러난 모습으로 그려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던 이유를 알 듯합니다. 

또 '미실'이 '반절의 문'만 열어 놓을 것을 얘기했는지도 알 것 같고요.




10년 전 쓴 글을 읽어보니, 뭔가 재미와 의미 그리고 분위기,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애쓴 것 같은 반성도 하게 된다. 그 당시 바이크에 관심이 있었고, 드라마가 '미실'이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데, 반절의 문만 열어 놓으라는 표현이 지금 봐도 참 재미있다.

그러게... 다 보여주면 재미없잖아..?

음악도 글도 예술 작품도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우리를 그 시기로 데려다 주기에 더욱 소중하다.

헤르만 헤세의 시처럼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은 행복이란 단어에 더는 연연하지 않듯이, 낭만을 꿈꾸는 사람은 오히려 낭만 따위는 잊어버리는 그저 하루하루 평범한 날들로 꾸며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을 말로 꺼내는 것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말로, 글로 나오는 순간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고, 행여 오용으로 인해 이 소중한 단어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만의 로맨스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낭만에 의지해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용기를 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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