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이 내 몫일지 몰라
"아빠! 아빠가 도와줄 것이 있어요, 이리 와봐요!"
"아빠! 스도쿠 할 줄 알아요?"
모르는 것이 생기면 아내에게만 묻던 큰애가 내게 물었다. 스도쿠는 큰애의 매일 숙제 중 하나다. 보아하니 회식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잘 모르겠다고 물어봤고, 아내는 내게 물어보라고 했나 보다.
반쯤 풀고 막혀있는 페이지를 가리키며 여기부터 잘 모르겠다고 했다. 6*6짜리,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들어가는 칸이 6개 총 36칸인 초급이었다.
난 빈칸을 하나 가리키며,
"지금 상태에서 이 칸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가 어떤 게 있지?"
"음... 1, 3, 4 이렇게요"
"그 숫자를 그 칸의 구석에 조그맣게 적어놔 볼래?"
"네? 여기에 적으라고요?"
"응 그래 적어봐. 꼭 정답만 적어야 하는 건 아니야. 가능성 있는 숫자를 구석에 작게 적어놓고 나중에 정답을 알겠으면 그때 정답을 크게 적으면 돼"
큰애는 조그맣고 삐툴빼툴한 글씨로 빈칸 구석에 시키는 대로 적는다.
"이렇게요??"
"응~ 잘했어. 그다음으로 요 칸에는 어떤 숫자가 들어갈 수 있을까?"
"여기는 2, 3 이렇게요"
"그러면 이 칸에는..."
"아빠! 잠깐만요. 내가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몇 칸을 작성하더니 이내 스윽쓰윽 하며 곧 잘 푼다. 조금 지켜보다 다시 소파로 돌아와 보던 책을 마저 펴는데, 녀석은 고새 다했는지 작성하던 스도쿠를 접고 자기의 핸드폰을 집어 든다.
그래.
바라만 본다고,
생각만 한다고,
매직아이처럼 한 번에 정답이 떠오르지 않을지 몰라.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만나서 물어보자.
답안지가 지저분해지면 어때
잘 모른다고
만나길, 물어보길 주저하지 말자.
빈칸 가득 깨끗한 오답지 보단
풀이과정 가득 최선 다한 정답지가 낫고
빈틈없이 메워진 벽돌담장보다
구멍숭숭 놓여진 제주도 돌담장이
비바람을 잘 견디는 것처럼
꼭 깨끗할 필요는 없잖아.
꼭 계획대로 짜맞추지 않아도 되잖아.
세우는 게 내 몫이 아니고
버티는 게 내 몫일지 몰라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