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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Aug 07. 2020

가슴 뛰는 삶을 살게 되다니

자기 계발의 부작용

나 : 선생님! 다른 증상들은 괜찮은데 가슴 두근거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요.


의사 : 지금도 약이 적은 편이 아닌데요. 지금 쓰고 있는 약이 원래는 심장치료제로 개발되었던 건데 치료제로 사용하기에는 효과가 적어서 신경정신과에서 쓰고 있는 거거든요. 


나 : 아~ 그런가요?


의사 : 지금 쓰고 있는 수준에서 더 높이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요.


나 : 부작용이요?


의사 : 네, 지금 쓰는 약 중에 40이라고 쓰여있는 하얀색 알약 있잖아요. 그게 많이 쓰면 혈압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 권장하지 않아요. 갑자기 환자가 쓰러질 수도 있거든요.


나 : 에고, 그러면 안되죠. 참! 선생님 이것 한번 봐주세요.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나와있었어요..


(건강 검진표의 문구를 천천히 읽더니)


의사 : 제가 보기에 아마 지금 치료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나타난 것 같은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장과 에 가서 진료를 한전 받아보세요. 여기에 지금 쓰고 있는 약 표시해 드릴 테니 함께 보여드려서 중복 안되게 하시고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의사 : 일단은 지난번과 동일한 약으로 처방해 드릴게요.


나 : 2주치죠?


의사 : 네 맞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나 : 감사합니다.




처음 정신과를 찾아갔을 때처럼 공황장애 증상이 전반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가슴 두근거림은 멈추질 않고 있다. 약은 하루에 3번 잘 챙겨 먹고 있다. 그런데도 두근거림이 줄어들지 않는다. 괜찮은 거 같기도 하다가도 어떨 때는 약을 먹어도 증상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마침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 관련하여 이상소견이 나온 만큼 혹시 먹고 있는 약이 효과가 적은 편이고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걸까?라는 희망을 가져보았었다. 하지만 웬걸, 진료 때 물어보니. 약이 적기는커녕 적지 않은 양을 먹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럴까.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가 5월 23일이었으니 지금은 벌써 두 달 반이나 지났는데.

앞으로 얼마의 기간이 더 필요한 걸까?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빨리 치료를 하고 털어버려야지'라는 생각처럼 되지는 않을 듯싶다. 썩은 무를 자르듯, 벌레 먹은 사과의 상한 부분을 도려내듯 그렇게 간단히 떼어낼 수 없을 모양이다. 아마도, 이 증상을, 가슴 두근거림을 평생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 두근거림, 가슴이 멈추지 않는다.

가슴 뛰는 삶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처음 자기 계발에 발을 들이면서 꿈꾸었던 삶.


가슴 뛰는 삶을 이렇게 살게 되다니.




생각해보면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도 지금 이상태까지 되기까지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사람을 만나면서 세웠던 목표, 비전, 꿈같은 것들. 그렇게 0.1%씩 성장하고 앞으로 나가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꺼라며 스스로를 옭아맨 것은 아닐까?


그것들이 언제부턴가 정체되면서 걱정이 생겼다. 내가 앓고 있는 '불안신경증'에 걱정을 추가한 것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건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게 아닌데'하며 말이다.


머릿속으로는 몸을 설득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어'라며.

'비록 예전처럼 매일 글을 쓰지 못하고, 영상을 못 찍어도 괜찮아. 대신에 매일 출퇴근하며 책을 읽고 있잖아.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있고, 새로운 일을 하며 경험을 쌓고 있잖아. 이것들이 0.1% 성장이 아니면 뭐니?' 하며 말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 설득이 잘 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머릿속은 인정하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몸이 고꾸라져버렸다. 마치 달리기를 할 때 다리는 못 따라가는데 몸만 앞으로 들이밀다가 앞으로 넘어지듯이.

 

그렇게 머리가 처박혀 버렸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몸뚱이는 내버려 둔 채 머리만 진흙탕 속에 처박아 놓고 있었다. 회복을 핑계로, 아픈단 핑계로 어느 누구와도 만나길 꺼려했고 어떤 말도 듣지 않고자 했다.


정신 차려야겠다. 이건 아니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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