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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Aug 08. 2019

벌써 스물여섯통째, 아내가 전화를 안받는다.

<프로이트의 의자 / 정도언 / 웅진지식하우스> 를 읽고


"형님! 죄송한데요.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어요. 내일 뵈요"


나이 차이가 열살이나 나지만 서로 마음이 잘 통해 간간히 퇴근후에도 만나는 형님이다. 업무상 매일 보기는 해도, 각자 바빠서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지가 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퇴근하고 만나 술한잔 하기로 했다. 각자의 집에 차를 두고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취소를 했다.                    


© chrismoore_, 출처 Unsplash

                               

벌써 스물여섯통 째다. 아내가 전화를 안받는다. 처음에 전화를 받았다면 오늘있는 술자리에 대한 허락을 받을 생각이었다. 난 그렇다. 온 가족이 서로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래 내 동선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생기면 가족끼리 반드시 공유를 한다. 


천사같은 아내는 당연히 승낙을 했을꺼다...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전화를 안 받는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전화를 거는 간격이 점점 좁아진다. 처음엔 10분 간격이었던 것이 이내 5분에서 1분단위로 줄어든다. 가슴이 터질것 같다.


오늘따라 길은 또 왜이리 막히는건지. 답답한 마음에 귓등만 때리는 라디오를 껐다. 전화기를 들어 통화버튼을 다시 눌러본다. 안 받는다. '무슨일 일까?', '회의중 일까?', '회의중이면 잠깐이라도 받았다 끊을텐데', '전화를 놓고 외근 나갔나?', '어떻게 된걸까?', '어디 아픈가?', '쓰러진걸까?', '쓰러졌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거 아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젠장, 길이라도 안막혀야지" 라고 하며 애꿎은 핸들에 화풀이를 해본다.                     

© adspedia, 출처 Unsplash

                                    

차 머리를 아내의 회사쪽으로 돌렸다.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가는내내 한손은 핸들을 잡고 한손은 전화기만 붙들었다. 이런 내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예전에도 이런적이 한번 있다. 그때의 대상은 어머니였다. 전화기를 두고 운동 나가셨던 어머니에게 50통은 했던 것 같다. 그때도 똑같았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쓰러지셨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깜짝 놀라 전화를 주신 어머니에게 화를 내며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뒤로 우리 가족은 무슨일이 있어도 전화는 꼭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걸 잘 아는데도 아내가 전화를 안 받는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것만 같았다. 점점 걱정은 더 심해져갔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앰뷸런스가 다녀가고,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고, 장인, 장모님 모습과 상심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모습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상은 점점 더해져 걱정이 분노로 바뀌려던 찰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회의에 들어가느라 전화를 못 챙겼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아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아내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 MRI, 출처 Pixabay

                                   

실제의 나를 본적이 있으신 분들은 의아해 하겠지만 내 이야기가 맞다. 내겐 전화통화 관련 불안증이 있다. 아무에게나 그런게 아니라 가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전화통화 관련이 아니라 건강 관련이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다. 


2000년 1월 사람들은 희망의 새천년이라고 들떠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족에겐 절망의 이천년이었다. 평온하던 일요일 아침, '심근경색'이라는 생전처음 들어보는 말과 함께 떠나신 분이 계셨다. 나는 불과 몇초전까지 이야기를 하며 함께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내 나름대론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 그렇게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소중한 사람을 내 눈 앞에서 잃었다. 응급처치를 하고, 119를 부르고,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을 하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상황을 오롯히 혼자 가슴에 담았다. 무력감을 느꼈고, 상실감과 공포감 등을 느꼈다. 내 삶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가족끼린 하루동선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이시간이면 아내는 회사에 있을테고, 큰아이는 학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있겠지 라고 말이다. 나 또한 똑같이 행동한다. 퇴근후 약속이 생기거나 퇴근이 늦어지면 반드시 전화를 한다. 술자리가 바뀌거나 장소를 이동하면 연락을 한다. 부재중전화가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한다. 일부러 안받거나 전화기를 꺼놓는 일은 상상도 해본적이 없다.





                                                       

걱정하는 일은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의자'란 책을 읽으며 또 다시 아픈기억이 소환 되었다. 벌써 19년이나 지난 기억. 그 경험 때문에 아직도 이러는 것을 생각하면 창피하다. 물론 나름대로는 다른 방향으로 잘 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닌건 아닌거니까.


전화를 받지 못한 아내에 의해 생긴 걱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책에서 저자인 정도언 박사는 말한다. 


'불안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입니다. 이때 말하는 스트레스는 밖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내 안에서 오는 것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불안의 불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타오릅니다. 그것이 급성 불안 입니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전화 한통을 못 받았을 뿐인데, 내 마음속에 불안의 불씨가 그것을 자꾸만 키우고 키워 온갖 상상을 더해 걱정을 하게 만든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불필요한 불안으로 인한 감정소모를 해야할까? 


책에서 저자는 불안을 몰아내려고만 하지말라고 하고 있다. 불안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있던 것이라고, 그렇기에 몰아내고 피하려 말고 그 불안한 마음을 천천히 들여보라고 한다.                             


© LAWJR, 출처 Pixabay

                            

나의 경우를 다시금 보자. 나는 불안 때문에 가족이 한순간 잘못될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전화 한번 못받은 걸로 말이다. 불안의 불씨를 상상으로 점점 키우면서. 


다행히 그날의 상황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약속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발표를 앞둔다거나 미팅을 앞둔 상황이 었으면 어쩔뻔 했을까? 


걱정하는 일은 대게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정말 만에하나 그런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평소에 함께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올리고,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해두는 행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것이다. 앞으로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해봐야겠다. 당장 해결이 되지 않을 걱정은 머리에서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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