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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Mar 10. 2021

참된 꽃축제를 기다리며




산수유 꽃축제, 벚꽃축제, 진달래꽃축제, 장미축제 그리고 유채꽃, 철쭉, 동백, 개나리, 매화 등 봄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꽃축제가 성황일 때가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서도 봄엔 유채꽃, 가을엔 코스모스 꽃축제를 열곤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많은 웃음꽃도 피곤했지요.



그렇지만 작년 봄부터 우리에겐 공식적인 꽃축제는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억지 꽃축제는 앞으로 다시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꽃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꽃 입장에서 그런 꽃축제가 즐거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 정원에 관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책장 앞에 서서 기억을 더듬어 이 책, 저책을 뒤적거리다 마침내 해당 책의 글을 발견하곤 바로 자리에 앉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글은 바로 '신경림 시인이 가려 뽑은 인간적으로 좋은 글 뭉클'이라는 책에 류시화 시인의 산문 <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이이었습니다.



우리집 정원을 나는 좋아한다. 나무들이 빙 둘러쳐져 있어서 마치 하나의 내면 세계처럼 이곳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거미의 계절이 되면 풀들이 우거지고 봄 내내는 민들레가 꿈결처럼 떠다니는 곳, 전혀 손대지 않고 가꾸지 않는 이 정원에서 아침마다 내 명상은 깊어져갔다.


그리 넓지 않지만 이곳에 갖가지 나무가 있고 풀들이 있다. 언젠부턴가 나는 이 정원을 '가꾸지' 않기로 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열흘이 멀다 하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 수고도 그렇지만, 그냥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인간이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어떤 것으로 알아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조화와 위엄을 망가뜨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급기야는 모든 것을 인간 위주의 눈으로 보아 파헤치고 추려낸 나머지 생명이란 나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파괴해야 할 것으로 되어버렸다. 그것에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한때 이 정원에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다. 잔디를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 수많은 다른 풀들이 뽑혀나가고 벌레들이 쫓겨났다. 거미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무들은 한해가 멀다하고 가지치기를 당했다. 그래서 깨끗하고 잘 다듬어지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략>

손을 대지 않고서부터 한 달이 채 안 가서 원래의 잔디는 순식간에 잡초들에게 점령당했다. 스무 평 남짓한 이 정원에 온갖 품들과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초대받지 않는 벌레들이 찾아왔다.

<중략>

그러고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새들이 이 정원으로 날아온 것이다. 이곳에 야생의 풀과 나무와 벌레 들이 있으니 새들은 더없이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이 정원에 한순간도 새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요즘 들어 나에게 가장 좋은 명상이 있다면 그것은 저 새로리를 듣는 것이다.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주로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들의 대화보다 저 새소리에 귀기울이는 편이다. 그것은 나를 깨어 있게 하고 더불어 내 안의 침묵으로 인도한다.


출처 : 신경림의 뭉클 중에서 <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_ 류시화>




한낱 스무 평 남짓한 정원도 인간의 '열심'이라는 욕심에 망가지는데. 하물며 전국 방방곡곡 인공적으로 가꾼 정원은 어떨까? 상상을 해봅니다.


꽃축제의 아름다운 꽃들을 보러 모인 사람들의 웃음꽃을 보며 꽃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꽃들은 웃음꽃으로 화답할지 쓴웃음을 지을지 말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식적인 꽃축제, 인위적인 억지 꽃축제는 사라질 예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ㅇㅇ꽃축제의 정원에 가더라도 자연스레 피어나는 다른 꽃도 볼 수 있고 수많은 벌레와 새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고생한 전국의 정원들에게 올해도 꽃들을 위한 참된 꽃축제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정원들에게 꽃들에게 안식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여행 중 만난 세복수초


한 예로 지리산 노고단은 성삼재까지 도로가 놓이며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혀졌고 그렇게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꽃축제가 사라질 2021년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해요.


이 안식년 덕분에 우리에겐 앞으로 미나리냉이, 꽃다지, 선괭이눈, 민대극, 팥꽃나무, 미선나무, 처녀치마, 나도개감채, 은난초 등등 수많은 우리 봄꽃이 활짝 웃음 짓는 그런 날이 올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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