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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꽃축제를 기다리며

by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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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꽃축제, 벚꽃축제, 진달래꽃축제, 장미축제 그리고 유채꽃, 철쭉, 동백, 개나리, 매화 등 봄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꽃축제가 성황일 때가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서도 봄엔 유채꽃, 가을엔 코스모스 꽃축제를 열곤 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많은 웃음꽃도 피곤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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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작년 봄부터 우리에겐 공식적인 꽃축제는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억지 꽃축제는 앞으로 다시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꽃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꽃 입장에서 그런 꽃축제가 즐거웠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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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글 중에 정원에 관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책장 앞에 서서 기억을 더듬어 이 책, 저책을 뒤적거리다 마침내 해당 책의 글을 발견하곤 바로 자리에 앉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글은 바로 '신경림 시인이 가려 뽑은 인간적으로 좋은 글 뭉클'이라는 책에 류시화 시인의 산문 <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이이었습니다.



우리집 정원을 나는 좋아한다. 나무들이 빙 둘러쳐져 있어서 마치 하나의 내면 세계처럼 이곳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거미의 계절이 되면 풀들이 우거지고 봄 내내는 민들레가 꿈결처럼 떠다니는 곳, 전혀 손대지 않고 가꾸지 않는 이 정원에서 아침마다 내 명상은 깊어져갔다.


그리 넓지 않지만 이곳에 갖가지 나무가 있고 풀들이 있다. 언젠부턴가 나는 이 정원을 '가꾸지' 않기로 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열흘이 멀다 하고 잡초를 뽑아야 하는 수고도 그렇지만, 그냥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인간이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어떤 것으로 알아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조화와 위엄을 망가뜨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급기야는 모든 것을 인간 위주의 눈으로 보아 파헤치고 추려낸 나머지 생명이란 나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파괴해야 할 것으로 되어버렸다. 그것에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한때 이 정원에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다. 잔디를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 수많은 다른 풀들이 뽑혀나가고 벌레들이 쫓겨났다. 거미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무들은 한해가 멀다하고 가지치기를 당했다. 그래서 깨끗하고 잘 다듬어지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략>

손을 대지 않고서부터 한 달이 채 안 가서 원래의 잔디는 순식간에 잡초들에게 점령당했다. 스무 평 남짓한 이 정원에 온갖 품들과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초대받지 않는 벌레들이 찾아왔다.

<중략>

그러고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새들이 이 정원으로 날아온 것이다. 이곳에 야생의 풀과 나무와 벌레 들이 있으니 새들은 더없이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이 정원에 한순간도 새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요즘 들어 나에게 가장 좋은 명상이 있다면 그것은 저 새로리를 듣는 것이다.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주로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들의 대화보다 저 새소리에 귀기울이는 편이다. 그것은 나를 깨어 있게 하고 더불어 내 안의 침묵으로 인도한다.


출처 : 신경림의 뭉클 중에서 <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_ 류시화>




한낱 스무 평 남짓한 정원도 인간의 '열심'이라는 욕심에 망가지는데. 하물며 전국 방방곡곡 인공적으로 가꾼 정원은 어떨까? 상상을 해봅니다.


꽃축제의 아름다운 꽃들을 보러 모인 사람들의 웃음꽃을 보며 꽃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꽃들은 웃음꽃으로 화답할지 쓴웃음을 지을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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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공식적인 꽃축제, 인위적인 억지 꽃축제는 사라질 예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ㅇㅇ꽃축제의 정원에 가더라도 자연스레 피어나는 다른 꽃도 볼 수 있고 수많은 벌레와 새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고생한 전국의 정원들에게 올해도 꽃들을 위한 참된 꽃축제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정원들에게 꽃들에게 안식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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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지리산 노고단은 성삼재까지 도로가 놓이며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혀졌고 그렇게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꽃축제가 사라질 2021년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해요.


이 안식년 덕분에 우리에겐 앞으로 미나리냉이, 꽃다지, 선괭이눈, 민대극, 팥꽃나무, 미선나무, 처녀치마, 나도개감채, 은난초 등등 수많은 우리 봄꽃이 활짝 웃음 짓는 그런 날이 올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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