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참을 붙이듯, 오늘도 쓴다
하트를 열심히 누르던 어느 날 출간된 책의 편집자님 글을 보았다. 그 글은 그분의 취향이었고 밑줄 긋고 싶은 글이었으며 보자마자 반했다고 한다. 눈으로만 따라 읽어도 술술 읽히는 리듬감에 타고난 필력. 편집자가 작가를 만나 그런 극찬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필력은 타고난 것일까 노력으로 되는 것일까. 그 작가는 언제부터 글을 잘 쓴 걸까? 모든 사람이 감탄할 만큼 대단한 필력은 유전일까 노력일까.
그것이 만약 쌍꺼풀처럼 타고난 유전이라면 나는 이미 망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 다거 늘 내 인생을 돌아보면 글재주에 될성부른 나무는 아니었는 게 정확하다. 어릴 때 나는 책이 정말 싫었다. 엄마의 "책 좀 읽으라"는 말은 늘 스트레스였다. 틈날 때마다 도서관을 데리고 가고 그걸로 모자라 독서토론회라는 프로그램에 날 강제 입소 시켰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싫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나는 그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또래들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지만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은 매주 정해진 책을 읽어왔으며 그거에 대해 서로 말하겠다며 난리였다. 그런 E성향의 아이들 사이에 나는 지쳤다. 책도 재미없고 그걸 읽고 토론하는 행위도 미친 듯싶었다. 이런 공간에 나를 넣은 엄마가 야속했다.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독후감 제출을 요구했다. 책도 싫은데 책 읽고 독후감이라니.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줄거리만 쫙 뽑아주던 세상도 아니고 중간중간 넘겨가며 멀쩡한 주인공을 죽이고 살리고는
내 몫이었다. 제목과 표지의 그림을 보고 상상으로 가득한 독후감 제출은 기본이었으며 그딴 글로 상 따위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글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 내가 책 출간을 하겠다며 필력을 운운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단다. 이거야 말로 쌍꺼풀 없는 놈이 쌍수하겠다며 성형외과를 찾은 게 아닌가. 하지만 요즘 세상은 의느님이 신의 경지에 오른 시대다. 유전으로 받은 대머리도 풍성해지는 세상인데,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유전자를 바꾸지 못하면, 만들어서라도 붙이면 되는 세상이다. 나는 없던 유전자를 내 몸에 새기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책은 늘 대단한 사람들의 걸작품이었다.
뒷내용이 궁금해 잠을 설칠 만큼 미쳐버릴 것 같았던 소설들은 모두 타고난 작가들이 만들어낸 세계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던 나는 조금 크면서 도서관의 책들을 스스로 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엄마의 잔소리는 없었다. 퇴마록에 미쳐 며칠 밤을 새웠고, 해외여행에 꽂혀 배낭여행객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수도 없이 다른 삶을 만났다. 수능을 끝내고 따뜻한 방구석에서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필력이라는 인공 유전자를 아주 극소량, 개미 눈물만큼 주입하기 시작한 순간이. 태어날 때는 없었던 글쓰기 유전자가 어딘가에서 아주 조금씩 발현되기 시작했을지도 모를 날의 시작.
아직은 타고난 사람들의 발가락 때만큼도 못한 실력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언젠가 내 글을 읽고 “이 글, 너무 좋은데요”라고 말해주는 편집자 한 사람이 나타나주길. 그게 내가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그 편집자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연은 분명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없는 쌍꺼풀에 아이참을 붙여가듯, 타고난 필력 유전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오늘도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