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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Sep 12. 2021

빛과 어둠 사이, 눈만이 하얗다.

작별하지 않는다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9월 1주] 8/30~9/5


올해 초 주요 일간지는 2021년의 문학을 예견하며 '거장의 귀환'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국외소설 중에서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가즈오 이시구로의 첫 소설인 『클라라와 태양』의 출간이 예고되었다. 국내소설로는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의 5년 만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화제작이었다. 작품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지금 두 편 모두 기다림에 걸맞은 찬사를 받고 있다. 결은 다르다. 『클라라와 태양』은 친절하고 읽기 쉽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실험적이다.



책은 작가의 전작 중 이미지는 『흰』을, 주제는 『소년이 온다』를 계승한다. 『흰』에 이어 다시 한번 하얀 색이 소설을 가득 채운다. 반복하여 나타나는 지배적인 상징물은 눈이다. 정화를 뜻하며, 빛과 어둠 사이를 부유하며, 위령제를 지내는 이의 하얀 저고리를 떠올리게 하는 눈. 또한, 주인공 경하는 눈발을 헤치며 제주도 산간의 친구 집을 찾는다. 이때 펼쳐지는 눈 세계의 광경은 감각을 압도한다. 이 이국적 풍경은 지금 여기의 화자가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이행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한강 문학 특유의 초월성을 한껏 끌어 올린다.


주제와 형식에 대해. 『소년이 온다』의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 사건을 돌아본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과 오늘 사이의 시간을 오고 가긴 하지만 서사가 분명하고 전달력이 높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많은 상징, 현실과 환상의 혼재, 기존 소설 문학을 자유롭게 풀어헤친 형식 등 새 시도를 한다. 책은 시, 소설, 사진, 영상, 공연 등 다양한 예술양식을 체험하게 한다. 물론 눈 결정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문장과 표현도 이야기해야 한다. 결국, 가장 예술가다운 방법으로 40년대 제주를 마주 바라보는 자리에 독자를 이끈다.


눈의 하얀색과 반대되는 검은색도 있다. 친구 인선의 잘린 손가락이 만든 괴로움의 진동은 소설 전반에 깔린다. 인선은 신경을 살리기 위해 잘린 손끝을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 피를 흘려야 한다. 『채식주의자』의 그로테스크함을 생각하게 하는 참혹함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 이 정도는 버티며 읽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제주 방언이 길게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희생자의 이야기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어야 한다. 상처와 치유를 다루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듣는 이의 윤리를 생각하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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