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환회 Sep 19. 2021

은은하고 힘이 센 식물처럼

지구 끝의 온실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9월 2주] 9/6~9/12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기생수』의 첫 문장이다. 이 작품과 『데빌맨』처럼 미지의 생물이나 악마 등 비인류인 적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인류를 묘사하는 SF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인간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인류 스스로 자처한 것일 때가 많다. 무분별한 개발 논리로 인해 오염된 지구를 정화해야 한다 주장하는 것이 악당인 점은 역설적이다. 인류는 벼랑 끝에 몰린다. 그러나 절멸에 이르지 않는다. 파괴된 균형을 회복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죽음의 먼지 '더스트'로 인류 대다수가 멸종된 2050년대를 미래 시점에서 돌아보는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오류를 되짚고 개선하며 공존을 추구할 줄 아는 '인간의 장점'을 발휘하여 인간이 초래한 세상의 붕괴에 대응한다. 매개는 모스바나라는 덩굴 식물, 무대는 피난처이자 연대 공동체인 '프림 빌리지'다. 지수와 레이첼은 구원의 실마리인 모스바나 연구를 진행하고, 나오미와 아마라는 이 식물의 외부 전파를 담당한다. 네 인물 그리고 재건 60주년을 맞은 현재 모스바나의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원 아영 모두 여성이다.


이처럼 남성이 아닌 여성이, 동물이 아닌 식물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 (배경도 서구가 아닌 아시아와 아프리카다.) 비주류 존재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염원을 내비친다. 한 가지 추가하자면, 재난의 한가운데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인물은 전사가 아닌 연구원이다. 여러 대학원생 개그의 단골 소재로 익숙했던 젊은 학자, 연구원, 엔지니어가 영웅을 맡는다. 포스텍에서 생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바이오센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작가의 경력을 반영한 부분이다. 그의 이름이 풀 초, 나뭇잎 엽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연결성을 더한다.


팬데믹 위기에 처한 지금 현실과의 접점이 넓다. 작가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재난의 끝을 상상하며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동시에 '재미'를 추구하며 쓴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소설이기도 하다. <매드 맥스>의 돌파감이나 액션이 주는 재미와는 거리가 있다. 지구 위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존재의 조화로운 공존 그리고 가장 어두운 상황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으려 하는 인간의 의지와 긍정. 이 메시지에 기꺼이 공감하기 위해 책을 읽을 때 어느덧 스며들게 되는 재미를 품고 있다. 이 재미는 은은하지만, 힘이 세다. 식물처럼.

작가의 이전글 빛과 어둠 사이, 눈만이 하얗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