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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Oct 10. 2021

천사가 없었던 새벽 거리

1차원이 되고 싶어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9월 5주] 9/27~10/3


2010년대 중반 한국문학계에 젊은 작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젊은 작가 팬클럽'에서 확고한 지분을 차지한 박상영에게는 다른 작가와 구분되는 몇 가지 개성이 있었다. 퀴어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남성 작가다. 그리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박상영 소설의 인물은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놓여도 그것을 개그로 활용한다. 자기 객관화가 뛰어난 작가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이때 자아내는 웃음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데뷔 후 두 편의 소설집과 연작소설에서 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보여준 박상영. 그의 첫 장편소설은 그러나 웬일로 코믹하지 않다.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십대 시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전성이 강한 이야기이므로 유머가 개입될 여지가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책소개만 먼저 보면 월드컵 직후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캔모아', 〈해피 투게더〉, 『호텔 아프리카』 등 시절의 기호들을 호출하는 청춘극일 것으로 예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다이어리는 아련한 추억보다는 쓰라린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 제목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단세포' 느낌의 언어유희가 아닌 정직한 연애 감정을 가리킨다. '머큐리 랜드'도 프레디 머큐리가 아닌 수성랜드의 직역이다.


웃음기를 뺀 박상영 소설. 독자는 의외의 감정을 느끼는 한편, 작가의 내면에 더 깊이 초대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십대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간절히 벗어나길 원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이유인 '경쟁, 비교, 폭력'이 일상화되었던 당시의 공기를 재현한다. 무능하거나 극성이거나 보수적인 어른들. 폭력적인 학교. 방황하는 청춘. 스스로 그토록 좋아한다고 말했던 박완서, 은희경의 세태소설을 자신의 방식으로 써내려간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여기에 추가된 스릴러 요소는 위태로운 소년의 심연을 더욱 서늘하고 절박하게 묘사하는 효과를 낸다.


물론 이 모든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주인공 '나'. 나를 사로잡은 윤도. 친구, 누나, 동생들. 이들은 모두 변화하고 싶어한다.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러잖아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 누구도 도와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사랑은 이뤄지기 특히 어렵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연애의 불이 밝혀지는 많지 않은 순간, 감정은 더욱 저릿하고 강렬하게 전해진다. 천사의 날개(사실은 찢어진 패딩)에서 떨어진 깃털을 날리며 새벽 도로를 스쿠터로 질주하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마치 둘이 모두 좋아한 감독인 왕가위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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