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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환회 Jul 10. 2022

충격과 파격으로 재미를 정조준

점성술 살인사건(1981) 시마다 소지

[세계 추리문학전집] 26/50


1936년, 화가 우메자와 헤이키치는 심취했던 점성술을 바탕으로 계획한 엽기적 친자 살해 망상을 정리한 수기를 남긴다. 닷새 후 자신이 시체로 발견된다. 이어서 수기의 내용대로 우메자와 일가의 여섯 딸이 죽음을 맞는다. 일본 전역은 충격에 휩싸인다. 우메자와의 수기와 사건 이후의 경과를 모은 책 『우메자가와 점성술 살인』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사건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40년이 흐른 현재 시점에도 미궁에 빠져 있다. 다시 이 미스터리에 도전한 콤비 중 홈스 역인 미타라이 기요시는 책의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한다. "전화번호부를 읽은 것 같아."



수기를 담은 '책 밖의 책' 『점성술 살인사건』을 처음 접한 사람이 느끼는 당혹감도 다르지 않다. 재미는 밤 고양이처럼 슬며시 다가와야 한다는 생각과 정반대 위치에 있는 책이다. 우선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정보가 쉴 새 없이 나열된다. 모든 서술과 자료의 함의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읽는 것은 힘겨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넘어 '보험 약관'을 읽는 듯한 난감함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작가가 위험을 부담하고 작정하고 썼다는 뜻이다. 당시 추리소설의 주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새로운 유형의 재미로 독자를 흔들겠다는 작정을.


시마다 소지는 작가 후기에서 직접 밝힌다. 그가 작품을 구상한 1970년대 일본 문단은 세이초 '덕분에' 장르문학이 인기를 끌 수 있었지만 동시에 세이초 '때문에' 자연주의 필치를 거스르는 트릭, 밀실, 명탐정 등 '본격 추리'의 요소는 철저하게 배척되고 있었다. 이를 뒤집고 신본격 조류를 개척한 문제작이 데뷔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이다. 발표 당시 평론가는 혹평했고 독자는 외면했다. 지금은 추리소설 역사의 기념비적 역작이자 신본격 미스터리의 전설로 칭송받는다. 반전이 가능했던 건 그 유명한 트릭의 충격 덕분이다.


구성의 파격도 정제되지 않은 강렬한 에너지를 전한다. 기승전결 구조를 취하지 않고 본론에 바로 돌입한다. 주인공은 이미 사건을 파고드는 중. 빨리 퍼즐 풀이에 돌입해야 하는데 도입부를 친절하게 풀어갈 시간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범인의 정체도 앞뒤 없이 너무 차분하게 소개된다. '그래도 범인이 이렇게 과격한 범행을 기획하고 실제 실행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물음은 허용되지 않는다. 작가는 두 번이나 직접 독자에게 도전장을 보낸다. 개연성과 현실성에 대한 의심을 접고 이 도전에 응하게 하는 것이 신비로운 아조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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