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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pr 25. 2021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갈망이 현실로..'

[영화 후기,리뷰/왓챠, 고전 영화 추천/결말 해석]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Love)

개봉일 : 1995.10.14 (한국 기준)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출연 : 그라지나 자폴로스카, 올라프 루바젠코, 스테파니아 아윈스카                                                                         

갈망이 현실로 무너져내리던 순간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88년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나도, 세상도 많이 변하긴 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수줍은 우체국 직원 ‘도메크’는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마그다’를 훔쳐보며 사랑을 느낀다. 도메크는 마그다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짜 송금표를 만들어 마그다의 얼굴을 마주하고, 매일 망원경 앞에 앉는다. 사실을 알게 된 마그다는 도메크에게 ‘꺼지라’고 욕을 하다가 이내 그의 진심을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듯 도메크의 손을 잡는다.


학생 땐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처음 도메크가 망원경에 눈을 딱 붙인 채 마그다를 훔쳐보는 시선이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지만 용기가 없어 훔쳐본다.’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졌다. 진정 원한다면 훔쳐보는 게 아닌 천천히 용기를 내야 하는 게 맞지 않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 또한 사랑인 건가?. 도메크는 창가 앞에 앉아 사랑을 갈망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 갈망이 ‘사랑’으로 변하는 건 영화 중반 부가 넘어갈 즈음, 사실을 알게 된 마그다가 도메크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부터였다. 용기가 없다는 변명하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남자의 손을 이끈 외로운 여자의 손. 그것이 사랑이었다.


마그다가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마그다가 이 잘못된 사랑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그저 스토킹, 스릴러 영화에 불과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될 만큼 수위가 높진 않았다고 느꼈지만,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겐 도메크가 행하던 ‘잘못된 사랑’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에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이성 간의 문제에 큰 사회적 관심이 없던 시대의 작품이다 보니.. 처음 시작이 거북하기도 했으나 뒤에 남는 씁쓸함이 큰 영화였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시놉시스


수줍음 많은 우체국 직원인 도메크는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연상의 독신녀 마그다를 망원경으로 몰래 훔쳐보며 사랑을 느낀다. 마그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도메크는 그녀의 아파트에 우유를 배달하고, 가짜 송금표를 만들어 그녀를 우체국으로 오게 하고, 마그다의 편지를 몰래 훔치고, 마그다가 사랑을 나눌 때 가스 고장 신고를 하는 등, 항상 그녀의 곁을 맴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보낸 통지서를 가지고 송금을 받으러 온 마그다가 오히려 송금을 조작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우체국을 나서는 걸 보고 통지서를 보낸 것도 자신이며, 오랫동안 그녀를 훔쳐 봐왔다고 털어놓는다. 도메크는 용기를 내서 마그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밤이 되자 두 사람은 마그다의 집으로 향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도메크는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여성 마그다를 훔쳐본다. 말수도, 표정도 별로 없는 도메크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도 딱히 없고, 흥미를 느끼는 활동도 없다. 우체국에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마그다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창문 앞에 설치된 망원경 앞에 앉는다.


친구 마르치나가 알려준 근사한 여성 마그다. 도메크는 속절없이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 하지만 직접 말을 걸 용기는 없다. “건너편 창가에서 훔쳐보고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말을 걸 수도, 그렇다고 자연스레 접근할 용기도 없다. 네모난 창문 안으로 보이는 마그다는 마치 아름다운 그림 같다. 그림을 그리는 그림 같은 여인. 그림 앞에 서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여인. 그 그림 안엔 도메크가 아닌 다른 남자가 함께하고 있다.


도메크는 마그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가짜 송금표를 만들고, 새벽 우유배달 일을 시작한다. 이 이상한 남자는 왜 말 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는 걸까. 도메크의 기척에 눈을 뜬 마그다는 무심하게 빈 우유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도메크는 가득 찬 우유병을 그 옆에 내려놓고 바라볼 뿐이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해지는 온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사이. 그게 도메크와 마그다의 사이, 두 사람은 남이었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요.


가짜 송금표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던 날. 도메크는 손대지 못할 그림 같은 여자 마그다의 옆에 서서 눈을 마주한다. 창문 너머, 우체국 유리창 넘어가 아닌 자신의 앞에서 마그다의 눈을 마주하게 된 도메크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신이 마그다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매일 밤 창문 너머로 나를 지켜보던 남자라니. 소름 끼칠 만도 한데 마그다는 당황하지 않고 되묻는다 “왜 훔쳐봤지?”라고.




“내 손을 쓰다듬어. 너도 저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야.”


마그다는 침착함을 넘어 무언가 통달한듯한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저 도메크보다 연상인 여인이어서..라는 느낌이라기보단 사랑을 너무 많이 반복해 그것에 지쳐버린 느낌이었달까.


도메크와 도메크의 친구 마르치나는 마그다를 FDCDD라고 불렀다. 그 뜻은 ‘근사한 엉덩이로 뻑하면 그것을 한다’는 것. 마그다는 남자들과 자주 사랑을 나눴다. 그녀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도메크를 보며 자신을 그와는 다른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칭한다. 마그다의 곁엔 항상 남자가 있지만, 그녀는 마음이 시릴 만큼 외로워 보였다. 

-

마그다는 도메크에게 묻는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도메크는 답한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자신과 육체적인 사랑을 즐기던 남자들과는 다르게 헐벗은 몸으로 유혹해도 그저 벌벌 떨며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남자. 마그다는 그런 도메크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알겠지? 그게 사랑의 전부야.


그날은 마그다가 도메크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고, 도메크는 높이 쌓아올린 사랑이 무너져내림을 느끼는 밤이었다. 사람이 왜 우는지,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기본적인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도메크에게 마그다는 ‘사랑’이었다.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도메크는 사랑을 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녀를 훔쳐보며 사랑을 키웠다. 손잡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 함께 사랑하고 싶다. 같은 욕망을 느끼지도 못했고, 그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마그다의 손과 자신의 손이 겹쳐지던 순간, 도메크는 이런 순간들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손이 마그다의 허벅지에 얹어지던 순간, 자신이 상상해온 사랑이 무너짐을 느낀다. 창문 너머로 훔쳐보던, 멈췄으면 하던 사랑의 순간이 도메크에게 다가온 것이다. 도메크는 마그다의 집에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오고, 손목을 긋는다. 사랑의 상실감은 도메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는 마르치나가 치통을 잊기 위해 달군 다리미로 어깨를 지졌던 것처럼, 이 커다란 고통을 잊기 위해 면도날을 집어 든다. 이전 사랑의 상실감으로 허우적대던 마그다는 더 큰 고통을 택한 도메크를 보며 외면하고 있던 사랑이란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도메크가 아침마다 배달했던 우유를 엎으며 한참 눈물을 흘렸던 식탁. 마그다는 도메크의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도메크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알게 된다. 나의 무방비한 알몸이 아닌, 울고 있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던 도메크의 시선을. 방법은 아름답지 않았으나 자신만의 사랑을 하고 있던 그에게 마그다는 사랑을 느낀다. 이 짧은 필름에 담긴 우울함과 쓸쓸함, 그리고 담담하게 무너져내리던 사랑의 순간이 형용할 수 없는 꿉꿉한 냄새를 풍긴다.


진심은 있었지만 어딘가 찝찝했던 이야기였다. 만일 내가 마그다였다면, 외로운 그 여자였다면 이 사랑을 소화시킬 수 있었을까. 나는 진심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힘껏 밖으로 밀어내며 침도 뱉었을 텐데.. 라는 생각과, 사랑을 받아들인 마그다의 눈빛에 담긴 쓸쓸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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