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토리> 리뷰, 후기 / 한국 여름 청춘 성장 영화
개봉일 : 2024.08.1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뮤지컬, 음악, 청춘, 시대극
러닝타임 : 120분
감독 : 박범수
출연 : 이혜리, 박세완, 이정하, 조아람, 최지수, 백하이, 권유나, 염지영, 이한주, 박효은, 이찬형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엔딩크레딧 초반에 영상 하나)
나는 웃는 낯에 침 뱉는 법을 모르는 물렁한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이 뻔뻔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에 질수밖에 없었다.
<빅토리>는 종말론과 희망적인 분위기가 교차하던 1999년 세기말, 얼렁뚱땅 만들어진 거제 상고의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의 성장기이자 너, 나,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스러운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필선과 미나는 춤을 사랑하는 소녀다. 필선과 미나는 2학년 때 클럽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친구들보다 한 학년 낮은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다들 3학년인데 우리는 2학년.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와 춤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필선과 미나 앞에 힙합이 아닌 다른 춤을 추는 전학생 세현이 등장한다. 필선과 미나는 세현을 견제하는 듯하다 이내 ‘깔끔하고 모범적인 서울 출신’인 세현을 이용해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는 필선과 미나의 사심을 바탕으로 얼렁뚱땅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다. 이젠 ‘만년 꼴찌인 학교의 축구부를 승리로 이끌 응원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거짓 공약을 지켜야 할 차례다. 각자 다른 마음과 성격을 가진 오합지졸 소녀들은 이 목표를 위해 차근차근 손발을 맞춰간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9명의 동아리원들이 서로를 얼싸안게 되고, 따로 놀다 못해 답이 없어 보였던 동작과 동선이 깔끔히 정돈되어가는 과정이 유치한듯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빅토리>는 치밀한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아쉬운 소리들이 목구멍에 턱 막혀서 잘 나오지 않는다. 넘어지고 뒤엉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녀들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우리는 모두 주연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어떻게 안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얼렁뚱땅 엉망진창이면 뭐 어떤가. 어쨌든 나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90년대를 지나온 소년, 소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스크린 너머에 있을 21세기의 누군가를 향해 보내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 나는 이 추억과 응원에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 말랑말랑한 반죽이 되어버렸다.
개연성, 작품성을 중시하는 편이라면 유치하고 뻔한 영화로 느낄 가능성이 높아 추천하지 않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영화, 배우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고 싶은 날이라면, 단순한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다면 <빅토리>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마음과 꿈을 가진 소녀들이 모인 밀레니엄 걸즈
각자 다른 거울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아리실, 유니폼, 치어리딩의 의미
극 중에서 처음 치어리딩 동아리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꼴찌인 교내 축구팀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선생님들은 치어리딩 동아리 제안에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축구에 미쳐있는 교장 선생님 덕분에 축구팀을 응원하는 조연으로나마 치어리딩 동아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모두가 반기고 기대했던 탄생은 아니었기에 이 동아리의 첫 시작은 초라했다. 필선, 미나, 세현이 일렬로 서있는 모습을 간신히 담아내는 작은 거울 하나. 이게 연습실의 전부다.
그런데 동아리원들을 모으고 밀레니엄 걸즈라는 이름을 정하고, 함께 낯선 동작들을 맞춰가는 과정을 거치며 동아리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작은 거울이 전부였던 한쪽 벽은 동아리원들이 어디선가 하나씩 들고 온 다양한 거울들로 가득 차고 엉망진창이었던 대형과 동작들은 착착 들어맞기 시작한다.
이후 밀레니엄 걸즈는 첫 공연 실패, 소희 아빠의 사고, 중앙고와의 싸움, 동아리원의 이탈 등 몇 가지 시련을 거치지만 마지막엔 “함께 치어리딩을 하자. 우리를 응원하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아온다.
아무리 쉬운 동작이라 해도 여러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두 번, 아니 열 번, 수십 번을 틀린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다른 생각, 다른 꿈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맞춰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 있고 누군가는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관계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밀레니엄 걸즈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필선, 미나, 세현, 소희, 순정, 용순, 상미, 유리, 지혜는 연습실에 붙은 다양한 모양의 거울들처럼 서로 닮은 구석이 없는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함께 실수와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따로 놀던 마음과 손발을 맞춰간다.
이들은 꼭 닮은 유니폼을 입고 밀레니엄 걸즈라는 ‘우리’가 되어 함께 치어리딩 무대를 완성한다. 필선이 지금까지 혼자 춰왔던 힙합 댄스와 다르게 모두가 합을 맞춰 춰야 하는 치어리딩은 단순한 춤이 아닌 밀레니엄 걸즈의 단단한 관계성과 노력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조연이 아닌 주연
모든 주연들에게 보내는 사랑스러운 응원
밀레니엄 걸즈라는 동아리는 축구팀을 위해 만들어진 조연이었고 미나는 딸만 일곱, 아들만 기다리는 집의 딸이었다. 세현은 오빠 동현에게 묻혀 세현이란 이름 대신 ‘동현이 동생’으로 불렸고 상미는 태권도 집 딸이지만 딸이 태권도를 배워서 뭐 하냐며 무시당했고 소희는 어딜 가나 깍두기였다고 고백한다.
<빅토리>는 경기의 주연인 축구팀 대신 보통 조연이라 여겨지는 치어리딩 팀의 탄생과 성장을 그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조연 취급을 받던 아이들이 스스로를 응원하고 당당히 주연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며 우리는 모두가 주연이고 모두가 빛나는 존재라는 응원을 보낸다.
나도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은 딱히 빛나지 않는다고, 이런 인생을 사는 내가 주연이라면 그 영화는 정말 재미없을 거라고. 그런데 밀레니엄 걸즈가 이 자조적인 생각 위에 생기 가득한 응원을 한바탕 뿌리고 갔다. 4강 치어리딩을 마친 밀레니엄 걸즈가 객석에서 날아오는 반짝이는 빛을 흠뻑 받는 장면을 볼 땐 나도 함께 행복함을 느꼈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히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줄이고 밀레니엄 걸즈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 갈등과 해소의 과정이 헐거웠던 것에 대한 아쉬움, 너무 전형적이고 안일한 진행이었다는 아쉬움 등등… 하지만 사랑스러워서 봐주려고 한다. 뭔가가 귀여워 보이는 콩깍지가 씌면 진짜 끝난 거라던데…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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