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

by 공간

바퀴가 은행을 짓이기고 간다

나도 은행을 밟고

어긋난 보도블록에도 떨어지고

신발 밑창에 어긋난 것들이 옮겨온다

모자이크처럼


깡통시장 골목에서 국밥을 끓이던 이모는

잠깐 머물렀던 곳의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모든 냄새들이 다닥다닥 겹쳐서

속옷까지 비린내가 났단다

이모가 건너온 파도를 따라 핏물이 끓어 넘쳤고

딸랑, 갈매기가 울었다

어슷썬 파가 떠다니는 해수면에

밥을 말아 푹푹 떠먹던 사내들은

이모도 삼킬 기세였다

나는 사내들이 먹다 남긴 새우젓을

다시 통으로 옮겨 담으면서

이모의 지문을 상상했다


밑창에 낀 은행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등대는 신호를 바꾸면서 버티는데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돛대

건너편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처럼

이모는 매번 또 다른 배를 찾았던 것이다

정박은 어딘가로 떠날 채비이다

항적航跡마다 하얀 거품이 떠오른다

모자이크처럼


돌아갈 곳이 없다면 차라리 돌아보지 않으면 된다.

그저 다시 힘주어 짐을 챙기고, 뱃고동 소리에 귀을 기울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