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렸다

by Haley


집이 팔렸다.


지난봄, 쭈꾸미 철을 맞아 지인들과 근처 식당에서 샤부샤부를 먹던 참이었다. 제철 음식 못 참지. 시끌시끌한 식당에서 저항하는 쭈꾸미를 욱여넣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사모님~ 집이 팔릴 것 같아요. 계좌번호 빨리빨리!”


엇? 나 지금 쭈꾸미 건져야 하는데?


술 때문인가. 갑자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얼떨결에 계좌 번호를 하나 불러 드렸더니 금세 낯선 이름으로부터 천 단위의 돈이 입금되었다.


진짜 집이 팔렸다고?


내가 살고 있던 집은 결혼 전 남편 이름으로 분양받은 신축 아파트였다. 당시 이 지역에서 소위 말해 신도시라는 동네의 아파트 청약을 신청했는데 일반 공급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같은 회사의 CC인 우리는 청약 신청도 사무실에서 했었다. 사이트를 켜 놓고 둘이서 타입을 고르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만 해도 20대 중반 갓 취업에 성공한 나는 아파트의 구조 같은 건 관심도 없었고 주변에 조언해 줄 친구도 전무한 처지였다.


그냥 당첨률이 높아 보이는 타입을 선택했고 안 되면 말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결론적으로 타입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당첨 사실만큼은 평생의 운을 여기에 써버린 걸까 싶을 정도로 잘한 일이었다.


결혼식 후 입주까지 공백이 있어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사택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사택은 오래된, 당시에도 이미 2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였다. 회사는 그 아파트 단지의 일부를 사택으로 구입하여 임직원들에게 약간의 보증금만 받고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있었다.


2년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어 대기 순대로 차례가 되면 제공받는 시스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신혼부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혜택이라 생각한다.


그게 너무 오래된, 그리고 관리가 잘 안 된 낡은 아파트라는 점만 빼면..


순차적으로 차례가 돌아오기 때문에 동/호수의 선택권은 없었고 우리는 그 아파트의 2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하 주차장 연결이 되지 않는 아파트였는데 저층 세대라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지만(옛날엔 저층엔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았다) 오히려 1층 출입구와 가까워 불편한 건 잘 모르고 지냈다.


아, 아이가 태어난 후 유모차를 들고 오르내릴 땐 조금 열받았었나..


애당초 1년 정도만 살 집이라 처음부터 기대랄 것도 없었고 꼭 필요한 가전제품과 가구로 신혼살림을 차렸다. 어쩌다 보니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늘어난 짐들을 이고 지고 새 아파트에 들어가게 될 줄은 예상 못 했지만.


우리가 받은 사택은 26평 형 방 3개에 욕실 1개가 딸린 아파트였다. 다행히 회사에서 욕실과 주방 싱크대 리모델링을 해줘서 나는 간단히 벽지와 장판 정도만 새로 하고 들어갔다. 동네 지물포에서 적당히 하얀 벽지와 나뭇결무늬의 장판을 골랐는데 하루 만에 뚝딱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게 나의 유일한 리모델링 경험이었으니 작금의 인테리어 세계에 발을 들이기에는 황당하리 만큼 무지한 상태였달까. 그 집에 살면서 나는 몇 가지를 결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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