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두꺼운 외투의 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 우리는 문득 진짜 겨울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일상에 흩날리는 눈이 아닌, 온 세상을 하얗게 집어삼켜 소리마저 지워버린 듯한, 그런 비현실적인 설국(雪國)을 꿈꾸게 되죠.
그 꿈의 종착지는 언제나 단 한 곳, 바로 북해도(홋카이도)입니다.
겨울의 북해도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추운 곳으로의 여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꺼이 겨울의 가장 깊은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며, 가장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소복이 쌓인 눈이 우리의 발자국을 안아주던, 그 잊을 수 없는 풍경 세 곳을 꺼내봅니다.
누군가는 오타루를 두고 '러브레터'의 도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이토록 실감 나는 계절이 또 있을까요. 해가 일찍이 잠드는 겨울의 오후, 낡은 석조 창고를 따라 오타루 운하에 가스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합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노란빛의 등불은 갓 내린 눈송이 위로 부드럽게 번져나갑니다. 그 불빛 아래를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이 작은 운하로 흘러드는 것만 같습니다. '오르골당'에서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가 눈송이처럼 흩날리고, 유리 공방의 작은 촛불이 어둠을 밝힐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도시가 왜 그토록 낭만이라 불리는지 깨닫게 됩니다.
겨울 북해도의 진짜 얼굴을 만나고 싶다면 비에이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관광지의 소란 대신, 오직 광활한 순백의 침묵만이 존재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눈밭 위에 홀로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켄과 메리의 나무'. 그들은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도 그 어떤 트리보다 완벽한 겨울의 상징이 됩니다.
모든 소리가 눈 속에 흡수되어 버린 그곳에 서면,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묘한 평화가 밀려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설원을 걷다 문득 뒤를 돌아볼 때, 내가 걸어온 길만이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있음을 발견합니다. 비에이의 겨울은, 그렇게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의 흔적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습니다.
이토록 지독한 추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가장 아이러니한 행복은 '뜨거움'입니다. 유황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온천 마을, 노보리베츠. 차가운 공기에 볼이 빨갛게 얼어붙은 채, 뜨거운 노천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아…’
탄성과 함께 온몸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눈송이가 흩날리는데, 내 몸은 더없이 따뜻한 물에 안겨있습니다. 이 모순적인 행복이야말로 북해도 여행의 정점입니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즐기는 온천. 그것은 겨울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뜨거운 위로입니다.
북해도의 겨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하얀 도화지 같은 풍경 앞에서, 우리의 복잡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 겨울, 당신만의 가장 순백한 위로를 만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