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있던 나날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by 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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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당연하지, 그 한 겨울에 바닷바람 맞으면서 한 시간 동안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래서 나는 참 신기해. 그런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그렇게 만나서 우리 둘 다 물에서 하는 건 다 좋아하고, 지금은 같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까지 따러 가는 길이잖아"

"그러게, 나는 운명을 안 믿는 사람이었는데도 '어, 이거 사실은 운명이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

1년 전에 했던 이 대화가 떠오른 건, 프리 다이빙 자격증을 따러 가는 길에서였다. 그때와 다른 점은 둘이 아닌 혼자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라는 것, 또 자격증을 따게 되어도 그녀는 알 수 없다는 것.

도착한 후 프리 다이빙을 준비하며 물을 바라보았을 때, 물은 시리게 차갑고 투명해 보였다.

"우리 같이 물에 있을 때는 참 신기해. 뭔가 그 전보다 더 포근한 느낌이라니까? 너는? 너는 안 그래?"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물은 다 똑같은 물이지. 나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말인 거야?"

"아, 아닌 게 아니라 정말이라니까? 다음에 나 없이 혼자서 물에 들어가 봐,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분명."


1년 전, 시험이 끝나고 그녀와 했던 대화였다. 그 시절의 우린 깊고, 뜨겁고, 푸르렀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 라는 말처럼, 처음 만난 날부터 그녀는 내게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아니, 나는 그녀에게 한참을 잠겨 있었다, 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너의 말이 맞았구나' 생각하면서 차갑고 투명한 물에 몸을 던졌다. 아, 역시나 운명은 믿지 않기로 했다. 혹여나 운명이 존재하고, 우리가 헤어지는 것이 내가 어쩌지 못할 운명이었다면,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대신 나는 그저 시린 외로움을 참아가며, 다시 한번 잠기고 싶어 밑으로 또 밑으로 침잠해 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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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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