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그리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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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시월로 접어들었다. 구월의 끝자락엔 꽤나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시월의 초입에선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더위를 많이 타는 누군가는 한낮에 선풍기를 다시 꺼낼 만큼 기온이 올라갔다.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지고,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헷갈리는 날이 많다. 분명 어렸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겨울이 다 지나갔다 싶었는데 꽃샘추위가 들이닥치는 날들이 많아지고 여름도 드디어 끝났구나 했는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들이 늘어난다. 딱 요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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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계절은 자꾸만 시간을 놓아주지 않고 끝에 매달려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계절과 같다. 많은 사랑이 그러하듯 나의 사랑에도 봄의 다정함과 여름의 뜨거움과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낭만이 모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은 계절처럼, 나의 마음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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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어김없이 벚꽃을 보며 걷는다. 그날 밤의 벚꽃에는 너의 향기가 뱄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너의 향이 스칠 때가 있다. 여름엔 어김없이 바다를 보러 떠난다. 그때 여름의 끝에서 마주한 바다는 꽤나 투명했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너의 눈빛이 비칠 때가 있다. 가을엔 어김없이 은행은 피하고 낙엽은 바스락바스락 밟는다. 같이 걷던 낙엽길은 바스러지는 느낌이 도드라졌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너의 발걸음이 선할 때가 있다. 겨울엔 어김없이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추운 날 마시던 커피보다도 네 곁이 더 따뜻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가끔 너의 온기가 어렴풋할 때가 있다. 분명히 그 모든 게 전부 지나가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너는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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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계절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각각의 계절을 지나온 사랑을 자꾸만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새로운 사랑은 그 사계절을 더 다채롭게 덧칠하고 또다시 떠나는 듯 남아있겠지. 이 사계의 향수는 꽤나 괴로운 종류의 그것으로 남곤 하는데,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기억은 가끔 현재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방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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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모두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은 예외로 하고, 어찌 됐든 계절은 지나가기 마련이기에, 지나간 사랑의 그리움도 계절처럼 아스라이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계절이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야겠지 뭐.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를, 그 어떤 계절의 모호한 밤이 오늘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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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