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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May 02. 2018

양철나무꾼의 심장을 가진 문래동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문래동 거리를 걸어봅니다


현대화된 서울의 얼굴은 어찌 보면 낯설고 차갑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어쩌면 어디서나 늘 낯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이 가진 도시의 면면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그곳만의 이야기. 그렇게 당신이 마주치길 바라는 문래동의 숨은 얼굴과 그가 가진 감춰진 표정들에 대하여.


양철나무꾼의 심장 소리


문래동에는 철공소가 참 많습니다. 1960년대부터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철공소들은 이곳을 각종 용접과 관련된 산업단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없던 것들을 생겨나게 했던 것처럼 다시 있던 것들을 사라지게 하기 마련입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 초반의 문래동은 대기오염이 최고 심각했던 지역으로 손꼽혔습니다. 이에 맞물려 문래동과 도림동 일대 철강판매상가를 외곽으로 이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래동을 가득 채웠던 철공소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문래동의 철강산업은 쇠퇴하고 빈자리는 늘어만 갔습니다. 

이 시기쯤,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 어두운 공장지대의 빈자리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 없는 철공소를 채우고 골목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생명 없이 사라져가던 철공 지역이 ‘예술촌’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방문해 아직 남아있는 공장들 사이로 예술이 남겨놓은 생명의 흔적을 찾는 일은 쉬우면서 또한 어렵습니다. 골목마다 과거와 현재가 존재합니다. 거칠게 철을 두드리는 소리와 보기만 해도 고요함이 느껴지는 손 글씨 간판이 한 골목에 이질적인 그림처럼 놓여있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차가운 것들은 모두 제각각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곳에 찾아가 마음을 열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공장 사이마다, 힐끗 들여다본 골목마다 새로운 세계가 있는데, 무엇 하나 그저 놓여진 것 같은 곳은 없습니다. 차가운데 따뜻하고, 익숙하지만 낯섭니다. 자연스레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곳의 이야기를 담아나갑니다. 


문래동,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던


‘임대료가 싸고 접근성도 좋은 곳’ 문래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애초 문래동에 모여들기 시작한 예술가들에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래동에 모였습니다. 현재 문래동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술가들은 건축, 디자인, 회화, 퍼포먼스, 영화 연극, 디자인 등 분야를 망라합니다. 그들은 문래동과 어떤 관계를 이루어 왔던 걸까요? 문래동의 거리 풍경을 떠올립니다. 차가 지나는 길을 따라 걸어본 도시는 조금 낡았고 평범해서 어쩌면 서울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골목은 다릅니다. 한 발만 디뎌보면 문래동의 진짜 얼굴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얼굴인가 하면 다른 얼굴이 보이고, 저 얼굴인가 하면 또 다른 얼굴이 기웃거립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이들에게 문래동은 이 많은 얼굴 중 어떤 얼굴인 걸까요?

어쩌면 답은 너무 뻔하고 평범해서 당연합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상업성이 짙어지기 시작한 도시의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래동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작업실과 공장의 수가 줄어들고 카페와 같은 상업시설의 수가 늘어납니다. 빈 공장지구를 채워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유명세에 휘청거리며 자리를 비웁니다.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흐름이니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들이 태어나고, 그에 이끌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후의 일들은 그저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인 것입니다. 기관이나 시에서 적극적으로 건물을 매입하고 그것을 시민과 크리에이터들이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문래동은 오래된 철강산업과 작가&예술가들의 충돌을 앓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에서는 외곽으로 빠져 비어버린 공장지대에 들어간 예술가들의 평화로운 점거가 공간의 분위기 교체를 만들었지만, 문래동은 엄연히 존재하는 철강산업 지구에 작가들이 들어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철강산업과 가난한 작가들이 높은 임대료와 상업성이 짙은 성격의 상가들에게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릅니다.

도심 속 공장지대는 사실상 도심 외곽으로 빠지는 것이 안정적인 도시 계획이므로, 공장지대인 문래동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체재가 무엇이어야 할지는 고민해보아야 할 숙제입니다. 문래동 고유의 콘텐츠를 무시한 채 일반적 해법인 공장형 아파트와 같은 변화가 정답인 걸까요? 아니면 이곳만의 자체적인 특성을 유지하며 최대한 많은 곳이 공존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문래동, 풍경의 컨텍스트


문래동 어느 골목을 들어가니 70~80년대에 와있고 또 어느 골목을 가니 예술적인 간판의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이곳을 터전 삼은 사람들에게 문래동의 ‘무엇’을 추천하고 싶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문래동의 조화와 부조화를 봐주세요’ 문래동의 조화와 부조화. 이제서야 그들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래동은 풍경과 풍경의 사이에 어떠한 법칙이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눈에 보이는 한 가지 만으로 딱 잘라 표현해내기 어려운 장소, 모든 것이 어울려있으면서 어울리지 않는 곳. 

어느 동화는 그랬습니다.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낯선 도시에 불시착한 소녀가 용기를 찾는 사자와 지혜가 필요한 허수아비, 심장을 원하는 양철나무꾼을 만나 여행을 시작합니다. 노란 벽돌 길을 타고 떠나는 그 여행의 끝에 그들은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얻었을까요? 도시 재생이란 여행의 끝에 문래동은 결국 어떤 스스로와 만나게 되는 것일까요?

문화인으로서 문래동을 즐기기 위한 Tip
평일의 철공소는 삶의 터전인 만큼 가급적 카메라가 아닌 눈으로 담아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주말에는 곳곳에 숨겨있는 벽화와 닫혀진 철공소 공장 문에 그려진 그림을 사진으로 담는 재미를 느껴도 좋습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들이 사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 사보 <사람과 공간> 2018년 4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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