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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Sep 26. 2023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예스터데이>

하루키의 한마디

15세~29세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40만 명은 구직 활동 없이 ‘그냥 쉬고 있다’라는 뉴스를 봤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적어도 40만 명이구나. 위안을 삼아야 할까, 백수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까. 물론 고등학생, 대학생, 재수생, 공시생, 가정주부 등을 제외한다면 그 숫자는 유의미하게 낮아지겠지만, 구직단념자, 백수,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는 이제 소수가 아니다. 이들(나를 포함한)은 경제활동인구의 부양 부담을 증가시키고,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자살이나 범죄 등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이는 어떤 명백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서 심도 있게 다룰 주제도 아니다(그럴 역량도 안 된다). 그런데 예스터데이의 기타루의 모습을 보자니 어째선지 기시감이 든다. 기타루도 이른바 '방황하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10년도 더 일찍 하루키는 한국의 상황을 예측했던 것일까? 일본은 한국의 미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는 유구한 역사에 늘 존재했던 골칫거리였을까?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예스터데이」

"야 다니무라. 그럼 내 여자친구랑 한번 사귀어볼래?"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나'의 친구 기타루가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묻자 그가 대답한다. "네가 제법 괜찮은 놈이니까." 기타루는 왜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명문대를 다니기는 여자친구 에리카를 두고 그런 말을 했을까.


기타루는 삼수생이다. 그러나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모티베이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명문대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모순의 이유는 기타루 안의 '분열'이다.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뒤처진 자기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고,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삶에 회의를 느낀다. 이는 사랑하는 여자친구 에리카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에리카와 교제 중인 기타루는 그녀에게 입시를 명분으로 교제를 삼갈 것을 부탁한다. 동시에 먼저 대학 생활을 시작한 에리카가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럴 바에 차라리 친구인 '나'가 에리카와 교제하는 편이 낫겠다는 엉뚱한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기타루의 계획대로 '나'는 에리카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뜻밖에도, 에리카는 식사 도중 '나'에게 기타루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가 삼수를 하면서도 공부하지 않는 점, 도쿄에서 나고 자랐지만 일부러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점(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서울 사람이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쓰는 느낌이다), 키스 이후로는 진도를 나가지 않는 점 등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타루는 아마 뭔가를 진지하게 찾고 있는 걸 거야.” 나는 말을 이었다. “여느 사람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매우 순수하고 정직하게. 하지만 자기가 뭘 찾고 있는지 스스로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거겠지.”


에리카는 같은 대학의 남자 선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는다. 그렇지만 그녀가 기타루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순히 많은 것들을 접해보고 싶다는 바람이자 호기심, 탐구심, 가능성에 끌릴 뿐이었다. 그녀는 기타루와 단둘이 항해하며 얼음으로 만들어진 달을 보는 꾸는 꿈을 자주 꾼다(표지 사진에 있는 달 그림이 이 장면이다). 언제까지나 그런 항해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말을 예견이라도 하듯 달이 뜨지 않는 밤이 올까 두려워한다.


에리카가 꿈꿨던 얼음 달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


기타루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십육 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우연히 에리카를 만난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바람피우던 상대와 잠을 잤었는지. 대답은 예스. 그리고 그 시점은 기타루가 사라진 시기와 일치한다. 기타루는 감이 좋은 녀석이었다. 에리카와 기타루는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그가 가끔 엽서를 보내온다고 한다. 지금은 덴버에서 초밥 요리사를 하고 있다. 에리카는 얼음 달 꿈을 더 이상 꾸지 않는다. '나'는 기타루가 제멋대로 개사해 부르던 비틀스의 노래를 추억한다.


어제는/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


나도 삼수를 했다. 늦은 나이에 졸업을 하고서도 취직도 못 했다. 사회가 정해준 길을 걸어가는 것에 회의도 들었다. 동시에 나름 번듯한 직장을 가진 대학 친구들을 부러워도 했다. 나 역시도 분열돼 있다. 기타루가 변명하듯 ‘모티베이션'이 없다. 양심이 찔린다. 동기도 야망도 없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요즘 세대는 나약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수긍해버리고 만다. 운 좋게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좋겠다. 태풍은 진로가 정해져 있어서." - 태풍 뉴스에 달린 누군가의 푸념

누군가 태풍 진로에 관한 뉴스를 보고 남긴 댓글에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것은 동시에 위안이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찾아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줄만 알았다. 나만 모두가 떠나버린 버스 정류장에 남아 목적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지나간 버스와 떠난 사람만 쳐다보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정류장에는 아직 방황하는 청춘들이 남아있었다. 태풍을 부러워하던 누군가도, <예스터데이>를 제멋대로 개사해서 부르는 기타루도.


하루키는 그런 청춘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너는 아마 뭔가를 진지하게 찾고 있는 걸 거야. 다만, 아직 뭘 찾고 있는지 스스로도 파악 못했을 뿐이야.’ 무엇을 찾는다는 건 얼마나 간절한 행위인가. 그런데 그 간절히 찾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 그 절망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멜로디의 노래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서 미칠 것 같던 순간처럼. 그렇기에 우리는 방황한다. 돌이켜보면, 태풍의 진로도 늘 바뀌어버리지 않았던가.


노파심이었을까, 하루키는 소설의 끝 무렵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참으로 마음 따뜻한 아저씨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는 길에 끝이 있을까? 어쩌면 돌고 도는 그 길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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