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마다 선생
1. 지난 4월, 내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다
영어 필수학점이 꽤나 남아있었기에 도움 될 것도 없는 영어수업을 4개나 등록했다. 이 놈의 학교는 4년 내내 똑같은 수준의 수업을 제공하는 주제에 글로벌화 어쩌고를 강조하며 영어 학점을 꽤나 많이 요구한다.
역시 모든 걸 보여주기식으로 처리하는 일본의 대학답다.
목요일 4교시, 웬 흰머리 할아버지가 얼굴엔 마스크, 양손에는 비닐장갑, 허리에는 전대가방을 차고 교실로 들어오더니 시작부터 일본의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유일하게 일본만이 회화 없이 영어를 가르치고 평가한다, 그래서 일본의 대학생들은 아무도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서로 말하려 다투고 상대의 의견을 비판하고 수업이 끝나고도 토론을 하는데 일본인은 거기서도 침묵만 지킨다 등
구구절절이 맞는 얘기지만 일본의 대학에 아무런 기대도 없는 나로서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30분간 늘어놓았다.
카마다 선생의 잡담은 트럼프, 미국의 업무방식, 일본의 경제침체원인 등으로 이어지더니 결국 90분을 혼자 떠들고 나머지 10분 동안 수업진행방식을 설명했다.
성적의 70프로는 수업 중의 발화량으로 결정한다, 수업 끝나기 전에 각 사람에게 오늘 몇 번의 발언을 했는지 묻고 자기가 답한 횟수에 대해 주위 학생들에게 동의를 얻어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정도의 설명이었다.
가뜩이나 수업 듣기 싫고 일본의 선생들을 우습게 여기던 나는 수업이 끝나고 언어교육센터에 뭐 이런 사람이 수업을 하냐며 항의 메일을 보냈다.
2. 역시나 일본의 대학답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도 카마다 선생은 매주 수업시작 후 30분가량은 똑같은 얘기-일본대학의 문제점, 트럼프의 화술, 영어권 국가의 업무방식-등을 반복했고 공지한 대로 수업이 끝날 무렵 모두에게 발표 횟수를 물었다
일본의 학생들답게 실제보다 발표 횟수를 부풀리는 학생이 있어도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동의했다.
‘뭐 대체 이런 수업이 다 있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일본애들은 안 바뀌는데’
꽤나 귀찮고 짜증 나는 수업이었지만 나의 영어실력과 발표력 모두 다른 학생들보다는 훨씬 앞서기에
수업 때마다 가장 많은 발언을 했고 당당하게 남들의 2배 이상의 발표 횟수를 보고했다.
3. 학기의 중반부쯤에 들어서니 몇 명의 학생들의 발화량이 꽤나 늘었다. 카마다 선생은 늘 오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를 강조하며 공부한 영어 표현들의 일본어를 물어봤다.
맨 앞줄에 앉은 여학생은 희귀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단원에서 일본어 고유명사를 죄다 답변하며 처음으로 나의 발화량을 앞질러버렸고 내 뒤에 앉은 긴 머리의 남학생은 우선 내가 답을 하면 이어지는 카마다 선생의 질문을 꼬리물기를 하듯 간단한 답을 끼워 넣으며 발화량을 늘려갔다.
카마다 선생은 매주 아무도 보지 않는 인쇄물-각 단원의 테마에 관한 영어 자료, 정보-을 잔뜩 준비해서 나눠줬다.
나야 뭐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받자마자 죄다 버렸지만 일부 학생들 중에는 흥미를 갖고 읽어보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발화량이 늘어난 것이 기뻤는지 어떤 날은 고급 초콜릿을 가져와 인쇄물 대신 나눠주기도 했다.
4. 알고 보니 카마다 선생은 1997년 교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의 통역을 맡는 등 국제적인 자리에서 꽤나 활약해 온 인물이었다.
학생 중에 외국인은 나와 중국인 한 명이 있었는데 특히 카마다 선생은 대통령도 국민의 손으로 몰아내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일본의 내각제와 한국의 대통령직선제를 비교하며 일본 국민들에 대해 분개하곤 했다.
나 또한 어차피 받는 수업, 시큰둥한 태도만 취하기보다는 선생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의견을 더하거나 궁금증에 답을 해주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회화를 즐기며 발화량도 챙겼다.
그러고 보니 매번 흘려들었던 카마다 선생의 트럼프, 미국의 방식, 일본의 문제점 등도 자꾸 듣다 보니 귀에 조금씩 들어오고 왜 이 사람이 고집스럽게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지 생각하게 됐다.
90년대부터 오랜 기간을 미국에서 일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60대가 된 카마다 선생, 그에게 있어 미국의 자유로움과 일본의 폐쇄성의 간극은 너무나도 컸을 테고 어쩌면 그로 인해 느낀 문제의식을 젊은 학생들에게 전하는 것을 본인의 커리어의 마지막 단계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5. 오늘은 마지막 수업날이다.
카마다 선생은 자신의 수업에서 단 한 가지-자발적으로 발언하고 모두의 동의여부를 통해 정답을 함께 정한다-만은 꼭 배워가길 바란다고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발화량이 제일 많았던 학생들을 위해 글루텐 프리의 고급 롤케이크를 준비했다. 그것 또한 알아서 가져가라고 책상 위에 놔뒀다.
쭈뼛거리는 다른 학생들을 뒤로하고 나는 제일 먼저 롤케이크 한 조각을 집었다. 수업이 끝날 때가 되니 그의 진심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차피 대학에서의 영어 수업을 통해 회화력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고 학생들은 학점취득 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으니 파격적인 평가 방법을 통해서 어린 학생들이 자발성 하나만큼은 배워가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수업평가 앙케트 같은 거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의 수업만큼은 정성을 다해 작성해야겠다.
그렇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