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흔이라는 나이는 확실히 특별하다.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20년 만에 시절이 바뀌는 것도 그렇고 청년과 노년의 중간 지점에서 양 쪽 모두에 대한 이해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이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심정들을 향유하며 감사함이 깊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었음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청년 시절에 동경하며 바라보던 아티스트들이 어느덧 노년이 되어 있고 이제는 내가 그 시절 그들의 나이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대하게만 보이던 그들이 머리가 세어지고
주름은 깊어지고 넘치던 카리스마 대신에 너스레를 떤다.
거울로 바라본 내 모습은
그때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2. 요즘 불꽃밴드 영상을 다시 보고 있다.
부활의 김태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20대 시절, 3대 기타리스트로 주목받으며 80년대에 밴드 전성기를 겪었다. 찬란한 미래를 꿈꿨을 그에게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찾아왔다. 유명 밴드의 보컬들이 솔로로 전향하고 밴드의 인기는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가 뽑아줬던 보컬 이승철은 톱스타가 됐는데
자신과 다른 연주자들은 세션, 밤무대 등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됐고 결국 대마초까지 손을 댄다.
93년에 ‘사랑할수록’으로 큰 성공을 거뒀을 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삶이 바닥을 친 후 다시 아름답게 꽃 피웠고 어두운 과거는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경호, 윤도현 같은 후배들이 인기를 얻고 자신을 따라다니던 신해철이 마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승승장구하던 락음악의 부흥기에 그는 다시금 침체기를 보내야 했고 중간에 박완규를 보컬로 영입하고 잠시 좋은 시절을 맞이했지만 인기 보컬의 팀탈퇴를 또다시 경험하게 됐다.
그 후로 그는 2002년에 이승철과의 재결합,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시작한 예능활동, 팀을 탈퇴하고 망가져버린 박완규와의 콜라보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 내가 수 없이 돌려보고 있는 ‘불꽃밴드’라는 경연프로에서 이승철과 발표한 ‘네버엔딩스토리’를 박완규와 함께 연주하기까지 이르렀다.
3.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나의 청년기는 늘 힘들었다. 음악을 하며 크게 주목을 받아본 적도 없고 수입이나 연애 등 개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딱히 화려했던 기억은 없다.
그 시기의 나는 힘겨워하는 스스로를 감싸고 지켜주기보다는 채찍질하고 몰아붙였었다. 그러지 않으면 지는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나의 모습도, 그 시절도 아름답다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청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도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이제는 아무리 그리워해도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없지만 여전히 나는 아름다운 시절 속을 살아가고 있다.
전성기가 지나고 무대에서 긴장하며 실수하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김태원처럼 힘겨운 시절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지금의 나 또한 그때보다 더 아름답다.
그러니 나에게도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무대가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