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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Aug 16. 2020

우는 게 상책이다!

1973년 여름

나는 잘 운다. 어렸을 때는 울보였다. 어른이 되어서는 잘 안 울 줄 알았는데, 여전히 잘 운다. 드라마나 영화 볼 때도 슬플 때는 물론이고 행복하고 기쁠 때도 남이 울 때도 따라 운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울보라고 놀려댄다.

얼마 전에도 놀리려고 남편이 아들 훈련소 입소식 날 찍은 우는 사진을 가족 단톡 방에 올렸다. 우는 내 모습을 보니 가관이다. 눈은 벌겋고 입은 삐뚤어져 있다. 그잖아도 두꺼운 입술은 더욱 부풀어 있다. 이젠 울지 말아야 하나?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으려나?

우는 걸 잘하는 연원을 찾아보면, 성장기에 일어난 소소한 일상마다 울면 해결된다는 의식이 형성된 게 아닌가 싶다. 또 하나의 일상이 기억난다.


하꼬방 동네 뒤편으로 펼쳐진 넓은 옥수수 밭을 지나 산더미처럼 높이 쌓인 쓰레기 하치장이 있었다. “어디서 저렇게나 많은 쓰레기가 나올까?” 하고 늘 궁금해했다. 바람이 동네 쪽으로 부는 날이면 매캐한 냄새와 먼지가 마을을 뒤덮었다. 

쓰레기 하치장은 하꼬방 동네 사람들에게는 살림살이를 마련할 수 있는 보물창고였다. 찬장, 그릇, 책상, 의자, 옷가지, 프라이팬, 냄비, 하다못해 숟가락, 젓가락까지... 아이들 역시 쓰레기 더미를 파고들었다. 보물 같은 장난감과 엿 바꿔 먹을 수 있는 고물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주어온 진기한 물건을 자랑할 때마다 부럽기도 했다. 나는 세 살짜리 막냇동생에게 예쁜 인형 하나를 주워 다가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날을 잡아 쓰레기 더미로 가기로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는 두 살 터울인 바로 밑의 동생을 데리고 쓰레기 더미로 향했다. 온갖 기괴한 냄새를 다 품고 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더미를 쑤실 때마다 연탄재 먼지가 풀썩풀썩 날렸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인형을 찾기 위해서 한참 동안을 땡볕에 쓰레기 더미에서 구르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했다. 한참을 뒤지다 보면 동생이나 나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서로를 쳐다보며 깔깔댔다. 틈만 나면 인형을 찾기 위해 그렇게 쓰레기장을 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 속에서 인형 다리 같은 것이 보였다. 얼른 잡아 빼니 인형이었다. 눕히면 눈이 감기고 일으키면 뜨는 인형이었다. 얼굴과 손발은 고무로 몸은 헝겊으로 구성된 모양이었다. 인형의 모습은 꼬질꼬질했고 보기에도 처참했다. 금발머리는 원래 색깔이 뭐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먼지로 범벅이었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얼룩져 있었다. 게다가 헝겊으로 된 몸통은 온갖 콘텐츠의 냄새를 다 가지고 있었다. 


인형을 집으로 가져와 수세미에 빨랫비누를 묻혀 닦기 시작했다. 얼굴과 머리는 그럭저럭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됐지만 몸통은 한참을 빨았는데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공동 펌프에서 길어다 놓은 물통의 물을 거의 다 써버리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다. 물을 채워 넣어야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양동이를 들고 펌프가로 갔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려면 펌프질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펌프에 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하는데 물이 말라버렸던 것이다. 물을 부으면서 펌프질을 재빠르게 거세게 해야 물이 올라온다. 바가지에 물을 받아가지고 동생 보고 천천히 부으라고 하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펌프질을 해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펌프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물만 덤벙덤벙 받아먹고 마는 것이었다.


너무 힘이 빠져 펌프를 발로 차고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그 순간 쓰레기장 쪽에서 한 넝마주이 아저씨가 넝마에 고물을 잔뜩 주워 메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우는 게 상책이었다. 동생과 나는 합세하여 막 울었다. 아니나 다를까? 넝마주이 아저씨가


"애들아 왜 그래, 무슨 일로 울고 있는 거니?"

"물을 길어 가야 하는데 펌프에서 물이 안 나와서요. 으앙~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이 나오지 않아요. 으앙~"


착한 넝마주이 아저씨가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자라면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 선물을 안 주신대"라는 노래와 "우는 애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 중에 후자를 선택하며 살다보니 울보가 된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너무 울지는 말고 살아야겠다. 못생겨지니 말이다.


사진: 카카오톡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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