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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Nov 01. 2020

연탄가스

1972

어릴 적 연탄가스를 마신 적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김치 국물을 가져와 마구 먹였다.

거울이면 동네 행사처럼 이 집 저 집에서 간혹 벌이지는 일상이었다.

하꼬방 동네는 겨울맞이 연탄을 들여놓는다.

좀 더 추운 날이면 바람 틈을 막아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막는다.

그러면 탈이 난다.


어머니는 하꼬방인데도 수입에 보탬이 되어볼까 하여 측면에 방 하나를 더 들여 공장에 다니는 청년들에게 세를 놓기도 했다.

어느 날, 옆집에 세 살던 처녀 언니가 연탄가스를 마셨다.

그 언니는 축 늘어진 머리를 한 채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청년 아저씨의 등에 업혀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 멋있는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알고 보니, 같은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나보다 일곱 살 위인 외사촌 언니가 있었다.

19살 나이에, 연탄가스로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아주 먼 곳에 있는 공장을 다니기 위해 자취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

외숙모는 언니에게 자취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언니는 어린 사촌동생에게 엄마놀이도 해주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해주곤 했다. 어린 나는 울 사이도 없이 아이들과 하꼬방 촌에 모여 사는 친척들에게 다니며 소식을 전했다.


“원옥이 언니가 죽었대요!... 연탄가스에!"


가로등 없는 하꼬방촌 사람들은 한밤중에 친척이나 남이나 할 것 없이 또 한 번의 슬픔을 나누었다.

사진 한 장 남겨진 게 없지만 언니의 모습은 하나도 잊히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눈매, 긴 머리, 키 크고 마른 다리...

그리고 첫달거리 하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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