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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n 09. 2020

업둥계(鷄) 이야기

굴러 들어온 복, 닭


또리(보더콜리, 양몰이 강아지)가 눈만 뜨면 하는 일이 있다. 꼬미(암탉)를 쫓는 일이다. 가만히 보면 해치려고 하는 짓이 아니다. 양을 모는 습성 때문에 그 일에 충실한 거다. 결과는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음을 증명이라고 하듯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모양새다. 낯선 이가 오면 기어코 현관 지붕에 얹어 놓고야 “나 잘했쥬?”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렇게 반려견과 반려계가 동거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되어 간다.   



  

어느 날, 닭 한 마리가 목줄 풀린 윗집 강아지 별이(진돗개)한테 쫓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공사장 도랑으로 피신을 했다. 나는 벌벌 떨고 있던 닭을 구해주려고 무심코 날개를 잡았다. 푸드덕 대는 닭을 품 안에 안고 또리의 빈 캐넬에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닭을 산 채로 만져 본적도 안아 본 적도 없다. 닭의 상태를 보니, 꽁지 쪽 털이 뽑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른 상처에 효과가 좋다는 마데카○을 발라 주었다. 조치를 취한 후 우리 집의 유일한 곡식인 쌀과 물을 줬다. 내가 지켜볼 때는 먹지 않더니만, 내가 안 보일 때 다 먹어 치웠다.

“쯧쯧 며칠을 굶고 헤매고 쫓겨 다녔나 보구나!”

일주일 정도 지나니 상처가 제법 아물었다. 이제 주인한테 보낼 차례다. 나는 이미 이 닭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탄이(검은색 시바견으로 연탄을 닮아 탄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엄마의 이야기이다. 우리 마을은 새로 조성된 전원마을로 집집마다 반려견이 있다. 호칭할 때 장성한 자식들 이름을 붙여 부르기가 애매해서 또리네, 탄이네, 단지네, 토토네, 송이네, 별이네... 등등 반려견 이름으로 호칭한다.  

여하튼 이일 이 있기 일주일 전쯤, 우리 전원마을에 웬 아저씨가 닭을 찾으러 왔었다고 한다. 와서는 다짜고짜 탄이를 보더니,     

“이 개가 우리 닭을 물어 갔어요!”

라며 항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탄이 엄마는 어이가 없어서

“아니, 종일 묶여 있는 개가 어떻게 닭을 물어가요?”

탄이는 마당에 왕복 줄에 묶여 지낸다. 탄이 입장에서 보면, 종일 묶여 사는 것도 서러운데 검둥개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도둑 누명까지 쓰게 된 셈이다.     

“우리 닭장에 검둥개가 침입해서 닭들이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다짜고짜 우리 집 개가 그랬다고 하시면 어떡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러면 이 마을에 또 다른 검둥개가 있나요?”

“있긴 한데 그 아이들은 집안에서 키우기 때문에 그 집 닭장을 침입할 리 없을 거예요.”    

결국 그 아저씨는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우리 마을 동편으로 내려다보이는 농막의 주인이었다. 농막을 짓고 주말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닭을 키우고 있었다. 검둥개라는 이웃 목격자의 증언을 단서로 우리 마을에 왔었던 거다. 검둥개라 하면, 우리 집 강아지 또리랑 윗집 진돗개인 별이, 탄이가 검은색이다. 또리는 하얀 가슴과 다리 머리의 일부가 하얗고 별이도 완전 검은색은 아니다. 그나마 탄이가 검둥개인 편이다. 나중에야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검둥개와 백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 강아지의 소행이 아님이 확실해진 거다. 떠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작당하고 닭장을 침입했을까?라고 생각하니 가여운 생각이 든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닭이 바로 그 집 닭이었던 거다. 돌려주려고 네 차례나 그 농막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주인을 만날 수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암탉은 아예 우리 집이 자기 집인 줄 알고 눌러앉았다. 그 농막 주인은 까맣게 모르는 사실이다.    

우리 닭처럼 이름도 ‘꼬미’라 지어주고 사료도 주문해서 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우게 되었다. 기특하게도 이틀에 한 번씩 알도 낳는다. 알 색깔이 청색인 것을 보니, 귀한 청계였던 거다. 속으로 “웬 득템인가!”했다.    

꼬미가 우리 집으로 들어온 지 반년 정도 지났을까? 중년 부부가 우리 집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던 남편이     

“누구신지요?”

“이 집에 닭이 있다길래...”    

부부는 또리가 현관 지붕에 올려놓은 꼬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하! 저 닭이네! 저 닭 들어 온 거 맞쥬?”    

남편은 내심 뜨끔해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돌려 달라면 어떻게 하지? 돌려주지 말고 어떻게든 돈으로 해결해 봐야지”)라고,  

“아하! 맞아요. 닭 주인이시구나! 닭 찾으러 오셨어요?”

“그건 아니고, 우리 집 닭인지 보러 왔어유, 우리 닭 맞네유!”    

그러면서 개들이 침입할 당시 여섯 마리의 닭을 잃었다고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자초지종에는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꼬미를 지켜 낼 수 있는가에만 골똘했다. 다행히도,

“여휴! 잘 살고 있구만유, 그라믄 됐쥬,

 여섯 마리 중에 한 마리라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네유,

잘 키우셔유!” 그 말에 덧붙여

“심심할 테니 수탉이라도 가져다 줄까유?”라 했다.


농막 부부의 배려에 남편이 감동한 모양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그렇게 해서 업둥계 꼬미는 완전 우리 식구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또리는 묵묵히 꼬미 뒤를 쫓고 있고 꼬미는 꼬꼬댁 대며 지붕으로 올라앉아

“여휴! 십년감수했네!”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떨 때는 남편의 머리로, 어깨로, 안아 줄 걸 알고 가슴으로 피신을 하기도 한다.     


“누가 욕으로 ‘개 ××’, ‘닭 대가 ×’라고 써먹기 시작했는지 원!”

물론 나도 써먹긴 했다. 이제는 아니다.

우리 집 개와 닭이 나의 언어 습관도 고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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