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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A Sep 21. 2024

01_ 7년 전 나를 만나다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한 문학소년

일기의 문체


7년 전의 나의 일기장을 보면 전반적으로 상당히 유치합니다. 그때도 20대 후반에 나름대로 저의 생각의 깊이가 깊다고 생각하던 시기인데 돌이켜보니 언어가 참 가볍습니다. 실은 이후에 이런 이유로 저의 일기장에는 존댓말을 적어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화가 나는 날에도 욕을 담지 않고, 조금 더 정제된 말을 쓰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차갑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7년 전의 저는 아직 그것을 몰라서 상당히 날카롭고 와드 한 친구입니다.


2017년 8월 27일
말 그대로 새로 쓰는 일기장이다. 그동안의 메모가 저장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빨리 이곳에 다른 데이터들을 모아놔야겠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청소를 하는 날이기에 하루의 시작을 일찍 시작했다. 오늘따라 그래서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고 직장인들과 섞여서 출근을 해보니 되게 암울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평소의 출근시간은 남들보다 조금 늦지만 청소를 위해 일찍 가는 날에는 일반적인 출근시간에 맞게 됩니다. 그리고 청소하는 날은 월요일이고요.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의 온도... 암울할만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막내가 아니기도 하고 더 자유롭게 일을 하기에 느끼지 않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저 출근길이란 것에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요.


2017년 9월 18일
그냥 나는 진짜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잘 아니 잘 안다. 외로워서다. 나의 모든 감정의 기복은 외로움에서부터 온다. 어려서도 나 혼자 있다는 외로움이 날 야비하고 이기적인 놈으로 만들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군대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선임들의 기대를 부응하려 노력했고 그러면서 각종 이간질과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 과거가 있다. 지금도 나는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먹으면서 살찌고 있다.

일기는 솔직할수록 좋다


지난 일기를 엿보면 만나게 되는 어린 나의 이야기들 중에 오늘의 나를 때리는 문장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나란 존재자체를 잊기도 해요. 그리고 이때의 제가 상당히 외로워하고 있었다는 것, 그건 실은 당시에 표면적으론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지만 일기장엔 솔직하게 적었나 봅니다. 당시의 저는 독서토론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흠뻑 빠져서 독서토론에 신나 있던 때입니다. 아마 그로 인해 외로움이 많이 덜어진 상태라 저런 솔직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의 저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좋은 반려자를 만나 외로움이란 결핍은 많이 채워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저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했기에 오늘의 제가 있었던 것 같아서 어린 나에게 고마운 마음. 오늘의 나도 무언가 일기장에 숨기고 있는 게 없는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2017년 10월 3일
시골집 앞 나무아래에서 의자하나를 놔두고 읽는 책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책을 읽다가 피로해진 눈이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환기가 된다. 언젠가 책을 쓰는 곳은 이런 곳에서 해야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가을, 전라도


이날이 기억납니다. 아마 명절이었을 거고, 이맘때의 전라도는(저의 시골) 청량함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 차에 실려가서 감금당하다가 돌아오는 곳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가니 서울에 비해 하늘이 너무 맑고 여름볕을 견뎌낸 황금빛 논은 어딜 찍어도 그림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직은 볕이 따가웠지만 나무그늘아래에서 책을 보고 있으니 그냥 나란 존재자체가 멋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지금 돌이키면 참 촌스럽다 생각이 들어야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당시의 제기분과 감각들이 일기를 통해 전해지기에 그 마음이 공감되고 부러운 느낌이 듭니다. 지금 같은 곳에 가서 똑같이 책을 읽으면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오늘의 제게는 어떤 의미 있는 하루가 있었는지,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2017년 12월 28일
나의 부족함을 짐을 채우면서 보완하려 하지만 그 짐을 풀어헤쳐놓으면 그저 욕심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내 욕심에 의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짐을 너무 많이 지어서 한걸음조차 걷지 못하는 것보다. 짐을 가볍게 짊어지고 같은 길을 여러 번 걷는 게 낫다. 짐은 언제나처럼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목표량까지만 짊어져야 한다.
오늘은 종무식을 앞두고 있고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된다. 연휴 동안 내 마음이 무거울지 가벼울지 오늘 달려있다. 솔직히 가벼울 것이란 기대는 않는다. 그저 무겁더라도 좋으니 답답한 상황의 해소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7년 전 초조함


당시의 저는 초조했습니다. 늘어가는 연차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나약해 보였습니다.  내년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이날을 돌이키면 당시에 제가 해낸 것들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게 부족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의 자세들은 다음 해 그다음 해에 더 발전하는 저를 가속시켰고, 많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기에 당시의 저의 초조함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저도 가지고 있는 비슷한 감정은 좀 덜어집니다. 먼 훗날의 제가 오늘의 저를 어떻게 바라볼지 대략 알겠거든요.  


잊고 있던 기억들

일기는 솔직할수록 좋았다.

유지혜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난 때이고, 그 책을 인연으로 지금의 반려자를 만난 해

출근길은 이때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퇴근길은 그래도 신났었다.

가을의 전라도는 하늘이 높았고, 이런 곳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외로웠지만 그 감정을 마주했고, 당돌했지만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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