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Oct 21. 2024

Ep5| 대학 교양 일본어 쯤이야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생. 뒤늦게 일본어와 사랑에 빠졌고 난생처음 가슴 떨릴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일본어 선생님.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사범대에 가야 한다.


고3이 되면 일본어 2를 배우게 될 줄 알았지만 비주류 과목이었기에 수업이 없었다. 일본어 1은 내 성적표에서 보기 드문 '수'로 마무리 지었다. 아쉽지만 내신을 높여줄 과목 하나를 잃었다. 대신 나 홀로 일본어 공부는 이어나갔다.


문과 친구들은 1년 이상 공부 했을 역사, 지리, 경제 등을 이제야 시작했다. 학교수업과 EBS 고교강의를 병행해 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애초에 공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공부한다고 한들 드라마틱한 반전신화를 쓰기 어려웠다.


당시 전국에 일어교육과는 건국대를 비롯해서 5곳. 사범대의 문턱은 서울, 지방 상관없이 높았다. 그래서 두 가지 방책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일본 유학, 두 번째는 교직 이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일본 유학은 일본 오사카 모 사립대에 있는 ‘외국어로서의 일본어 교육과’였다. 우리나라 정규 교사가 되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일본어 선생님 타이틀은 얻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국내 한 일본유학원과 업무협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다만 유학원은 속초가 아닌 수도권에 있었고 유학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경해야 했다. 부모님 설득은 성공했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극구 반대했다.


“일본유학은 대학교 가서 가도 늦지 않아.”


2학년 때 나를 가르쳤던 일본어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출 갔다. 대신 옆 학교에서 있던 선생님이 새로 부임했다. 담임선생님이 그분께 상담을 했는지 나를 호출했다. 생김새가 꼭 철권 게임에 나오는 헤이하치와 닮았었다. 사납게 생긴 인상처럼 완고하게 유학 가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선택은 나의 몫. 유학원에 상담자료를 요청했고 일본유학에 관련된 정보를 모았다. 그러다 얼마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유학에 필요한 ‘돈’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가도 돈이 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준비과정에서도 이미 천 단위이상 돈이 들어갔다. 거기에 당시 일본 물가는 비쌌다. 모든 경제적인 짐을 부모님께 짊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인근 국립대에 교직 과정이 설치된 일본학과가 있었다. 다만 학부제로 모집 중이었다. 대학 1학년때는 인문학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대신 성적순(선착순) 선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예상대로 수능시험은 사범대 가기에 부족했지만 다행히 국립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 후 시간표에 일본 관련 과목을 추가했다. 교양 일본어, 일본 문화, 기초 일어문법 등이었다. 당시 사용했던 교양 일본어 교재는 ‘분카 일본어’.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시작했다. 이미 고1 때부터 갈고닦았던 것들이다. 사실상 공부라기보다 복습에 가까웠다. 교재 내용도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일본어 1과 유사했다. A학점은 이미 보장된 수준이었다.


기초 일본문법은 교양 일본어와 내용이 겹친다. 명사, 조사, い형용사, な형용사, 1그룹~3그룹 동사, 정중어, 자동사와 타동사 등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초수업인 만큼 아카데믹한 내용을 요하지 않았다. 분카 일본어에서 문법적인 요소를 심화한 레벨의 수업이었고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


일본어보다 더 기대가 되었던 것은 일본문화 수업. 일본학과 전공 교수님 담당이었다. 2학년때부터 만나게 될 교수님은 어떤 분일까? 그런 호기심이 가득했다. 첫 수업,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의 중년 남성분이 들어왔다. 어딘가 일본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일본 전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닮았다. 일본 오사카에서 박사과정을 보냈다고 했다. 그의 수년간에 걸친 일본 생활 경험담과 함께 듣는 일본사회, 역사, 마츠리 같은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수업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토크쇼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전공 교수님 수업도 들었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2학년부터 시작될 학과 생활이 기대되었다. 다만 학부 내에서 영문과 뒤를 잇는 인기학과. 성적이 관건이었다. 1학년 1학기때는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A학점을 받은 교양일본어와 일본문화를 제외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위기감을 느끼고 2학기 들어서는 일부 학점포기와 성적관리를 통해 1학년을 평점 약 4점으로 마무리 지었다.


학기 종료 후 전공 선택 제1지망에 일본학과를 적었다. 다행히 선발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학년 일본학과 생이 된다! 교직이수 필수과목도 수강할 예정이다. 일본어 선생님이라는 목표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만나지 못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날의 희열. 일본어는 언어 그 이상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미즈키시게루 로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