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가 생기자마자 원룸(1DK)을 계약했다. 셰어하우스 생활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른 입주자와 동선이 겹치는 경우 씻고 식사하는 것들이 여러모로 불편했다. 일 끝나고 녹초가 되어서도 남을 신경 써야 한다는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부동산들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외국인 불가능한 건물, 가격에 비해 너무나 좁은 건물, 초기비용(시키킹, 레이킹)이 비싼 건물 등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회사 퇴근길에 들렀던 부동산 체인에서 이벤트 물건으로 초기비용도 없고 외국인도 가능하며 내 급여로 감당 가능한 수준 (대략 7만 엔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계약도 무리 없이 2년.
은행계좌도 이쯤 해서 개설했다. 외국인이라면 쉽게 개설 가능한 우체국통장을 시작으로 회사 주거래 은행인 미츠비시도쿄UFJ은행 (현, 三菱UFJ銀行)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일명 3대 메가뱅크 중 하나로 한자와 나오키에 빠져 지내서였는지 메가뱅크에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기뻤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계약했다. 1년 이상 비자가 있어야 이동통신사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한국에서 빌려온 가라케(피처폰)를 사용했었다. 정부에서 받았던 인턴 지원금을 조금씩 모와 소프트뱅크에서 아이폰5s를 구매했다. 원래는 필리핀 어학연수 갈 때 밑천으로 쓰려고 했던 돈이다. 아직 신용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현금 일시불로 치렀다. 몇 달 동안은 여유가 없겠지만 즐거웠다. 일본어로 말문이 트이고 비자까지 생기니 일본 생활이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본인 친구였다. 회사안팎으로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속해 있다 보니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대부분이었다. 팀 내 일본인 직원도 한 명뿐이고 성별도, 사는 지역도 달라 사적으로 친해지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언어교환 어플을 사용해 보았다. 언어교환 어플에도 한국어를 알고 싶어 하는 일본인 친구들이 많이 있어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온라인에 국한되다 보니 직접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잡기 어려웠다. 한국재일문화원에 있는 게시판을 통해서도 친구를 구한다는 내용을 올리기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 때 인턴으로 있던 곳의 한국 파견(일본인) 직원 오다하라와 연락이 닿았다. 이따금씩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었는데 그가 도쿄에 온다는 것이었다. 회사 퇴근길 버스 경유지인 몬젠나카초(門前仲町)의 한 이자카야에서 그와 재회했다. 여러 일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토리아에즈 나마(とりあえず生! 술 첫 잔은 생맥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인턴으로 일할 때 내가 작성한 일본어 문장을 체크도 해주고 많은 조언도 아끼지 않았던 친구(형)다. 그때는 일본어가 짧아 몇 마디 못했었지만 이번에는 2시간 가까이 그와 웃고 떠들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일본인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상담을 했다. 때마침 그의 후배 중 한국사무소에 있다가 도쿄 본사로 돌아온 친구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어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일본에 돌아와서도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오다하라 덕분에 페이스북으로 그 후배, 사이토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속전속결로 같은 주 주말에 있는 홈파티에 초대받았다.
도쿄 에비스에 사이토가 사는 집이 있었다. 방 한 개에 넓은 거실이 딸린 맨션이다. 참가조건은 각자 마실 술 지참과 음식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1천엔씩 부담하는 것이었다. 오후 1시경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선발대가 도착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워가기 시작했고 주선자인 사이토의 인사말과 함께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사이토와 마찬가지로 한국 Y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어학연수를 했던 친구들, 그리고 한국에 관심이 있는 그의 친구들이 주요 멤버들이었다. 요리도 일식과 함께 간단한 한식도 곁들였다. 오리지널 한국인은 나 혼자. 이렇게 많은 일본인 사이에 둘러 쌓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직장에서와 달리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무겁고 어려운 경어를 쓸 일도 없었고 그저 웃고 떠들다 해지면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나중에는 나보다 앞서 일본에 들어온 선배 형도 모임에 초대했다.
매 주말이면 이들과 함께였다. 봄에는 사이토 집에서 주로 모임을 가졌고 날이 따뜻해지면서부터는 요요기 공원, 오다이바 등에서도 만남을 가졌다. 무더운 여름에는 나가시 소멘을 먹기도 했다. 나가시소멘은 반으로 자른 대나무를 연결해서 차가운 물을 흐르게 한 다음 소면을 물에 흘려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인데 여기에 게임을 곁들였다. 소면을 바로 집으면 성공이고 실패하면 ‘한 잔’ 마시는 식이다. 한인 커뮤니티에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사이토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며 즐길 수 있었다.
어느덧 이런 모임을 갖은 지도 1년이 되어갔다. 고정 멤버도 있는가 하면 그때그때 새로 참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름 이들 무리와 잘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모임을 전후로 한 하루, 이틀은 라인 그룹방이 시끌 벅쩍했다가 금세 조용해진다는 점이었다.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없을까? 내심 그런 고민이 들었다.
“라인 아이디 교환해요!”
어느 여름날 모임 끝날 무렵 몇 친구에게 라인 아이디 교환을 제안했다. 이 정도 거리감이라면 연락처 교환은 가능하겠지. 그런데 단칼에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연락은 그룹방에서만 하자는 것이었다. 개별연락은 서로의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알기 전까지 불가능했다.
몇 달을 주말마다 이렇게 웃고 떠들고 지냈는데도 개별 연락은 ‘아직’이라고 선을 긋는 것을 보고 일종의 문화 차이를 느꼈다. 이런 게 일본의 인간관계인가? 왜인지 지난 시간들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일본을, 일본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