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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Sep 22. 2022

한국과 일본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어요

Ep04. 내가 진짜 일본에 가고 싶었던 이유

"색깔 보니까... 매울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도 잘 먹어요. 제 말 믿고 한 번만 드셔보세요."


한인마트에 찾은 손님을 상대로 한 시식판촉회. 이번에는 한국의 자랑인 고추장, 된장, 쌈장이 그 대상이었다. 2013년 당시는 한류붐이 다소 주춤한 상태였고 고추장은 야끼니꾸(焼肉) 식당에서 나오거나 비빔밥 덕분에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지만 쌈장은 그렇지 못했다.


비록 인턴 업무 때문에 시식을 권유하는 것이긴 했지만 매콤달콤하면서도 깊은 맛을 가진 쌈장의 매력을 일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일본에 한국을 알리는 일


27살에 늦깍기 인턴이 되어 했던 일 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대표적이었던 것은 무역사절단(수출상담회)과 시식판촉회였다. 


무역사절단의 경우 한국 중소기업들의 수출 희망품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 바이어들을 섭외하여 상담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상담회 행사가 메인이다. 인턴들은 선배(직원)들을 도와가며 바이어를 상담시간에 맞게 안내하거나 한국 기업들을 서포트 하는 역할을 했다. 


시식판촉회의 경우는 주로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던 신오쿠보 한인마트에 작은 판촉부스를 설치하고 시식이나 테스트를 진행하고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피드백 (설문)을 받는 일이었다.


어느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해본적이 없던 일이기도 했고 더구나 일본어로 대응을 해야하니 행사기간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밥은 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기 일쑤. 혹여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머릿속으로 여러번 이미지 트레이닝도 해보고 부족한 일본어 공부도 해보았지만 역시 하나, 둘 미스는 나왔다. (당연히 혼났다...)


그럼에도 행사들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늘 큰 자긍심을 느꼈다. 나라를 대표해서 일본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국가대표처럼.


가교역할을 하는 방법


그러고보면 어릴때부터 어렴풋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처음에는 일본어 선생님이 되어서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에서도 꿈을 이루는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교직이수에 미끄러지면서 패스. (교육대학원도 생각했지만 매년 줄어드는 일본어 교사 T.O와 학비 부담으로 포기.)


그 다음이 해외영업 일본 담당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반년만에 운이 좋게도(!) 여러 난관을 뚫고 목표를 달성. 하지만 딱딱한 회사 분위기와 군 시절보다 더 혹독한 사수를 만나 3개월만에 퇴사. (자세한 이야기는 '첫번째 사표를 내다.'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 후 선택한 것이 일본 해외인턴이었다. 다행이도 한국 기업들(상품)을 일본에 알리는 일이였고 일 자체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가교역할'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회사에 출근하는 길이 날마다 설레였고 아마 이런 기분을 느낀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 같다. 


당연히 일은 즐거웠고 비록 실습인턴이라는 포지션이었지만 스스로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20대의 혈기도 있었겠지만 밤낮,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했다. 직원분들과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인턴근무를 한지 4개월차가 될 무렵, 부장님으로 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정사원으로 일해보지 않을래?"


※일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으나 일부 편협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가 끝나면 브런치북으로 엮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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