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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Jun 16. 2022

첫번째 사표를 내다.

충동적이었지만 충동적이지 않았던 첫 사표의 이유

국민요정 정경미 포레버!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듬뿍 담겼을 이 대사는 나에게는 가장 잔인한 대사였다. 매주 일요일 밤 시청하던 개그콘서트는 이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엔딩곡이 울려 퍼졌고 다시 지옥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박수가 빨라짐을 느꼈다.


아침 8시 30분 출근. 퇴근은 미지수


회사는 다른 곳들보다 30분 일찍 근무를 시작했다. 신입이었던 나는 당연히 그보다 더 일찍, 그러니까 8시 전까지는 회사에 출근했다. 도착해서는 업무 메뉴얼과 함께 밤새 메일함에 쌓여있던 이메일을 읽었고 제조공장에 의뢰한 원단의 생산 스케줄 확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8시 30분 되기 10분전쯤이면 어김 없이 나의 사수였던 김 과장님도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는 창가쪽에 위치한 본인의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나를 불렀다.


"김형민씨"


아... 시작되었다. 업무 OJT라고 할 것도 특별히 없었고 거의 바로 실전이었다. 십수년을 이 일을 해왔던 그와는 달리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그러니까 백지상태인 나는 아무리 메모를 하고 수십번 그의 발을 복기해봐도 이해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는 중에 하나, 둘 미스가 발생했다.


"아니 대체 뭘 한거야? 모르면 물어봐야 될꺼 아니야? 아이 XX 진짜..."


짧은 스포츠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나를 향하는 거친 말투. 군대에 악마가 있듯 그 또한 해외영업부서내의 악마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질문을 해도 이런 것도 질문하냐는 그의 핀잔이 쏟아졌고 그게 두려워 그 옆에 있던 평사원 선배에게 대신 질문을 하기 수차례. 그러나 그 또한 바쁜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형민씨는 왜 모든걸 다 물어봐요?"


팀내 직속 선배는 영어권 국가를 담당하고 있었다. 거래처들은 당연히 지구 반대편쪽에 있는 곳이었고 그 곳의 시간에 맞추어 일 하다 보니 매일 막차를 타고 퇴근하기 일쑤였던 그가, 나에게 짜증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였다. 


일은 처리 해야하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고, 물어보자니 눈치 보이고.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퇴근 시간인 오후 5시 30분을 훌쩍 넘겼고 금새 밤 9시, 10시가 되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회사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고시방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다리를 피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막힌 공간이 그나마 유일한 안식처였다. 


방금 눈을 붙인 것 같은데 금새 날이 밝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회사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김 과장님이 출근했다. 


"김형민씨!"


일본에 가야겠어요


2013년 5월이 밝았다. 시간이 약일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하루 하루는 잔인하리만큼 똑같았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존재할리 만무했고 오늘 하루 제발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형민아. 나 일 그만두고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 가기로 했어"


여느날처럼 점심시간, 회사 근처 벤치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을 때 대학교 선배로 부터 메세지 한통을 받았다. 워킹홀리데이라. 선배도 나도 둘 다 일본 유학 경험은 커녕 짧은 여행경험이 전부였다. 나보다 먼저 취업해서 서울에서 잘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 했던 선배의 갑작스런 연락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더 늦기 전에 일본 가는게 좋을 것 같아. 다음달에 바로 일본에 가기로 했어"


학교 선배와의 짧은 통화를 끝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이곳에서의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렇게 살다가는 최소 우울증에 걸릴 것이 뻔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직속 선배에게 상담을 요청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 저 회사 그만두고 일본에 가겠습니다." 


나의 갑작스런 말에 적지 않게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했을지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으니까.


"너무 충동적으로 생각하는거 아니야? 몇일만 더 생각해보고 그때도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과장님께 보고 드릴게"


그날 저녁부터 나는 일본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워킹홀리데이, 해외인턴, 신문장학생 등등... 그러다가 해외인턴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 왔고 모집요강을 확인 후 이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정부에서 해외 취업을 장려 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일 뒤 나는 다시 직속 선배에게 일본에 가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으며 해외인턴제도를 통해서 가을경에 일본으로 가겠다고 구체적 계획까지 전달 했다. 선배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김 과장님에게 보고를 드렸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한국에서의 지독했던 첫 사회생활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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