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민 Jun 14. 2022

생애 첫 면접. 그리고 취업 재수

사회생활 10년차 6번의 퇴사. 그 시작은?

"3월 31일부로 퇴사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즈키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 답변 할까? 안된다고 붙잡으려나..?'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썼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얘기하시죠."


의외로 스즈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동안 다른 회사에서 퇴사 이야기를 전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조금은 당황했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은 후련했다. 그렇게 나는 6번째 퇴사를 확정 지었다.


생애 첫 면접


2012년 8월. 나는 26살 여름에 대학을 졸업했다. 군 전역 이후 반년간 휴학을 했던 터라 조금 늦은 졸업이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 행사를 마친 그 날. 나는 곧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도 벌고 차도 사서, 졸업한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후배들에게 마음껏 고기도 사줄 수 있는 그런 인심 후한 선배가 될 줄았다.


그런데 그 기대는 금새 깨지고야 말았다. 졸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힌 첫 면접. 모 제약 대기업 해외영업팀 면접이었다. 


"자기소개 해보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OO제약의 일본 시장 진출 핵심인재로 성장 할 김형민 입니다."


아마 대략 이러한 말도 안되는 자기소개 멘트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나름 대학교 취업캠프 때 모의 면접에서 1등도 하고 다양한 면접 사례집도 보고 혼자 카메라로 촬영해서 면접 교정을 하는 등 나름 만발의 준비를 했던 터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했듯 나 또한 심각한 긴장 탓에 들숨 날숨은 정신 없이 오가고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두서가 없었고 앞에 있던 인사담당자와 해외영업팀 팀장의 미간이 점점 찌그러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욱이 당시는 압박면접이 이상하리만큼 유행하던 때였고 나의 대사에 빈틈을 잡은 인사담당자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까 홈쇼핑 채널로 중고 핸드폰을 파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내 생각은 다르거든요? 왜 그런 생각을 했죠?"

"아.. 그러니까 그게..."


대학 생활 중 성공경험을 이야기 해보라고 하길래 마케팅 수업에서 '중고핸드폰 판매'라는 팀과제를 홈쇼핑 형식으로 영상편집을 하여 1등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특별히 홈쇼핑이 왜 중고핸드폰 판매에 좋은 채널이 될 지에 대해서 정량적인 고민은 없던 터였다. 인사담당자의 질문에 어느정도 답변은 했지만 그것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점점 변명+거짓만 늘어 놓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형민씨. 일본 담당을 뽑는다고는 해도 무역서류도 봐야해서 영어가 필요한데 영어점수가 없네요?"

"아직 점수는 없지만 공부해오고 있었고 3개월 안에 무역서류 볼 정도의 영어실력을 만들겠습니다!"


인사담당자에 비하면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해외영업팀장님의 질문 또한 나에게 송곳처럼 다가왔다. 일본 해외영업이어서 영어는 특별히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던 나의 자만이었다. 모법답안처럼 단점을 극복하겠다는 투의 대답을 늘어 놓았고 그렇게 그 날의 면접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몇 일후 문자로 결과 통보가 왔다.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년간의 취업 (토익) 재수생


첫 면접 실패는 사실 큰 충격이었다.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지만 형편 없던 면접 실력, 그리고 영어 점수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 부랴부랴 찾아본 해외영업 구인정보들을 보니 보통 '토익 800점 이상'이 기본이었다. 나는 당시 교내에서 본 토익 400점이 전부였다. 


이 날 이후로 본격적으로 토익공부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살고 있던 곳은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충청도의 한 시골이었고 당연히 토익학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토익공부를 위해 서울로 유학 갈 형편도 인강을 들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서 토익교재와 단어장을 샀고 매일 아침 6시부터 밤12시까지 공부했다. (참고로 시험을 보기 위해서도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게 한달을 불태운 뒤 본 첫 토익 시험. 480점.


당연히 처음부터 점수가 잘 나올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렇지만 500점도 안되는 점수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의 공부법이 잘 못 된 것이었을까? 사실 중, 고등학교때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대학시절때는 영어와 담을 쌓고 지냈었기에 영어와 관련된 지식이 거의 0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과연 토익 700점대는 가능한걸까? 그것도 독학으로... 라는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졌다.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성공사례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었다.


두 번째 시험 540점, 세 번째 시험 580점.


분명히 점수는 미세히 올라가고 있었지만 아직 600점도 넘지 못했고 당연히 이력서를 낼 수 있는 점수도 아니었다. 이미 토익 하겠다고 매달린지 3개월째. 지치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하고 취업도 안하고 방에 틀어 밖혀 있는 아들을 보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 생활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적당히 타협해서 그저 그런 직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공부 시작전에 연습장에 크게 이렇게 적었다.


토익 800점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이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3개월차 이후로는 기본 문제집 외에 모의고사를 중심으로 풀었다. 때마침 토익 유명 스타강사들의 무료 모의고사 강의가 업체들의 경쟁 속에 속속들이 올라왔고 이 강의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학습했다. 


네 번째 시험 640점. 다섯번째 시험 680점.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다행이도 모의고사를 중점적으로 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목표로 하는 800점에는 못미치는 점수. 어떻게 해야 목표점수를 넘을 달성할 수 있을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당시 토익 점수가 있던 후배로 부터 조언을 들었다. 


"LC에 집중투자하는게 점수 올리기 더 수월해"


그말을 들은 나는 듣기평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스크립트를 달달 외웠다. 어차피 전부다 알아 듣는건 무리이니 포인트 (단어)라도 듣겠다는 일념으로 덤벼 들었다. 그리고 본 (마지막) 토익시험.


800점.


그렇게 매일 같이 연습장에 적었던 점수가 내 손안에 들어 왔다. 그리고서 나는 그동안 공부했던 토익책을 모조리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토익점수 제한이 있던 해외영업팀 구인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