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바다에서 생각하다.
제주 바다는 참 신기하다. 제주 동쪽과 서쪽바다 모두 다른데, 같은 동쪽에서도 색상이 어떻게 이리 다를까. 제주에 오면, 어느 순간부터 세화바다를 자주 찾게 됐다. 바다만 본다면 김녕해수욕장을 제일 1순위로 뽑았을 테지만, 김녕해변보다 바람도 강하게 불지 않고 바닷물도 얕아서 자주 찾게 됐다. 잔잔한 물결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카페와 상점이 많이 붐비지 않았고, 사람도 적당히 있어서 너무 휑하지 않아 좋았다. 지금의 세화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모랫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짐을 내려놓고 털썩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파란색과 에메랄드빛 색상이 층처럼 나뉘어 있다가도 그라데이션처럼 바다 색깔이 이어져 있다. 바다 물결을 따라 눈을 돌리다 보면 서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잔잔한 물에서 수영하기도 하고, 추억 사진을 남기려는 듯 돌 위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다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평화로운 이 순간들이 좋았다.
그런데, 무언가 해소되지 않는 기분이 있었다. 여행하니 기분이 좋아진 건 분명한데, 모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럼에도 뭔가 풀어지지 않은 매듭이 있는 기분이었다.
문득, 오래전, 지인이 나에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정확한 말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런 말이었던 것 같았다. “여행으로 푸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는 그게 아닐 거야. 어느 순간에는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질지도 몰라”라고. 그땐, 무슨 소리일지 생각했다. ‘나는 이미 여행으로 나름대로 나를 잘 달래고 있는데.’ 심지어는 여행을 앞둔 내게, 여행 설렘을 반 스푼 깎는 말로 들려서, 나의 좁은 마음에 못마땅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 같다. 기분 전환 위해서 가는 여행도 좋지만, 단순히 기분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라는 걸.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니까. 물론, 기분이 나아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언제 있었냐는 듯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내 마음속 깊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지나가듯 진지하게 나한테 말했던 걸까?
마음에 여유를. 틈을 가져다주는 건 틀림없지만, 아직,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건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내 마음에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준다는 거. 좋은 영향임은 틀림없다. 꼭 해결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나에게 주는 좋은 영향이라면 잘 간직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더 단단한 사람이 될 테니까.
일러스트레이터 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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